#직장인 이 모(29)씨는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걸 느낀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친구들보다 일찍 취업한 탓에 쉽게 일상을 털어놓지 못한다. 이 씨는 “친구들에게 몇 번 말했는데 ‘너는 잘됐으니까 그런 걱정도 하는 거지’란 대답이 돌아왔다”고 답했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속마음을 꺼내지 않고 위로받길 두려워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 말문을 닫아버리거나 혼자 삭이며 힘겨워한다. 대학 입학, 취업 등 생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면서 상대방을 불신하다 보니 생기는 이른바 ‘위로포비아’ 현상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취업포털 인크루트를 통해 회원 273명에게 설문한 결과 ‘본인의 상황,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만 머뭇거린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88.5%에 달했다. 주변에 상황을 털어놓고 공감을 받는다는 답변은 18%에 머물렀다. 또 ‘힘이 들 때 혼자 삭인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61.3%였다. 쉽게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이유는 비슷했다.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호구가 될까봐”, “그게 추후에 내 약점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서로 사정을 공감해줄 만한 시간적 감정적 여유가 없어서”, “내 말이 강요되거나 오해의 소지를 남길까 봐” 등 이유가 잇따랐다.
[영상]“힘들어도 말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속마음. 20대 남녀 7명(대학생, 취업 준비생, 공무원 준비생, 기업 인턴, 대기업 사원, 방송국 라디오 작가)의 삶과 고민을 담은 인터뷰 영상. /서울경제유튜브 |
이처럼 젊은 세대들이 고민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음의 병은 점점 깊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취준생 최 씨(27)는 “가끔은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버틴다”며 “결국 남을 깎아내려서 만든 멘탈이라고 생각하니 자기 혐오에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취준생 박 모(26)씨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사람’의 기준에 맞춰 그렇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며 “남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부분은 숨기다 보니 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알바천국의 설문에 따르면 20대 대다수는 ‘행복해 보이는 지인을 볼 때(27.6%)’,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21.9%)’ 등 이유로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답했다. 지난해 출간된 ‘자존감 수업’은 출간 1년 1개월 만에 50만부 넘게 팔리기도 했다.
최근 한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 게시글에 올라온 댓글. 타인의 사연에 날 선 반응하는 커뮤니티 분위기가 보여진다. /대나무숲캡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위로포비아’ 증상이 악화하면 우울증 증가, 행복감 저하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 심리상담센터 부원장은 “최근 삶에 대한 기대보다 절망감을 많이 느껴 상담 시설을 찾는 20대들이 늘고 있다”며 “서로 말하지 않으면 두려움과 불안 증상이 동반돼 자존감은 낮아지고 자기애를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평호 단국대학교 사회과학 교수는 “현시대에서 개개인은 자신을 하나의 기업체처럼 정확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산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기업체로서 결격 사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젊은층이 마음의 문을 닫는 현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구조 변화가 선행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인간의 개인화를 개개인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며 “기업과 정부가 먼저 개인주의, 성과주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연주인턴기자 yeonju18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