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도로와 지하철 등 인프라 투자에 정평이 난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회장은 최근 국내 기관투자가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독립과 금융투자 전문가 확충이 백지화된 상태에서 새 그림을 그릴 기금운용본부장이나 해외대체실장은 수개월째 공석이라는 점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청와대·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지배구조가 발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대체투자에 독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국민연금 대신 서울에서 만난 다른 기관투자가와 영국 런던 투자를 확정 지었다.
세계적 큰손인 국민연금이 주식과 채권 이외 대체투자 분야에서 발이 묶이고 있다. 냉정하고 빠른 판단이 필요한 해외 투자는 기금운용본부장 등 인선이 늦어지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기조에 맞춰 추진력이 줄어들고 있다. 국내의 도로 등 인프라 투자는 과거 투자가 비난을 받으면서 국민연금 스스로 꺼린다.
국민연금은 내년까지 대체투자 비중을 10.7%에서 12.5%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체투자는 건물 및 도로·항공·에너지 등 인프라 분야와 구조조정 기업 지분에 직접 투자하거나 인수 합병 과정에서 대출해주는 인수금융 등을 말한다. 적절한 리스크 관리를 전제로 국민연금의 목표 수익률인 5.1%를 맞추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투자 대상이다.
그러나 최근 국민연금의 대체투자는 주춤하고 있다. 대체투자 증가율은 2015년 17.2%, 2016년 14.2%에 이어 올해 9월 말 현재 2.7%에 그쳤다. 대체투자 인력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해외대체실장은 올해 1월 이후 적임자를 찾지 못하며 1년 가까이 공석이다. 실장을 보좌할 팀장도 사표를 냈다.
새 정부는 국민연금의 국내 인프라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민연금이 과거 투자한 유료 도로 등은 10년 넘게 통행료 인하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선거 공약으로 등장하는 통행료 인하 정책이 시행되면서 국민연금은 계약서를 고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했다. 국민연금은 서울고속도로 등 4개 민간 사업자에 지분투자와 선순위·후순위 대출 등으로 모두 3조3,200억원을 투자했다. 이 중 후순위채권 7,184억원에는 20~40%의 이자율이 적용되고 앞으로 65%까지 오른다. 이는 장기 투자가 필요하고 초기 투자 수익률이 낮은 민자 도로에 투자자를 끌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이자를 내는 민자사업자 대부분이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구조여서 세금으로 국민연금에 고금리를 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국민연금에 수익형 민자사업(BTO)에 과도한 투자수익률을 조정하라고 권고했고 국토교통부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수익률을 낮춰 통행료를 인하하는 협상을 시작했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수익성이 낮거나 계약 조건 변동 가능성이 있는 국내 인프라 투자를 독려하려면 보증과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인프라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보험이나 보증제도를 민간 보험사 이외에도 공공기관이 운영하면서 이 같은 위험을 방어한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보증기구(MIGA)는 주로 신흥국 인프라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조정하고 최장 20년의 장기 보증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금융공사(IFC)는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의 지분투자를 통해 인프라 투자 위험을 줄여주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장기간 지속되는 인프라 투자에서 예상치 못한 조건 변경이 나타나면 리스크가 되므로 이를 보완할 장치가 있다면 국민연금 투자 전략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