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가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이 없는 기독교와 같다.” 우주 항공사이자 사업가인 프랭크 보만의 말이다. 부도가 자본주의의 요소라 해도 1997년은 너무 가혹했다. 1997년은 한마디로 부도의 역사다. 1월23일 한보그룹, 3월20일 삼미, 4월18일 진로, 5월20일 대농, 7월15일 기아차그룹, 10월15일 쌍방울, 11월1일 해태, 11월25일 수산그룹, 12월5일 한라그룹이 쓰러졌다. 특히 기아의 몰락은 충격이었다. 증권시장은 1994년 11월 1,145포인트였던 종합주가지수가 1998년 6월 277포인트까지 하락했다.
1997년 증권시장은 어땠을까. 최고 지수상승률 12월15일의 7.22%(지수 385.80, 25.98포인트 상승), 최고 지수하락률 11월24일의 7.17%(450.64, 34.79포인트 하락), 단순 하루 최대 하락폭 11월7일의 38.24포인트(지수 515.63), 하루 최대거래량 12월6일의 1억1,195만4,000주, 연초 대비 42.47% 하락은 사상 최대였다. 12월12일 총 상장종목 957개 중 54.3%인 520개 액면가 이하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당시 2,220이란 말도 나왔다. 원·달러 환율 2,000원, 종합주가지수 200, 금리 20%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20년이 지난 2017년 11월21일의 종합주가지수는 2,530.7이다. 한국의 종합주가지수는 상장회사 전 종목을 대상으로 한 시가총액 방식으로 1980년 1월4일의 시가총액을 지수 100으로 했다. 그 사이 25배나 올랐단 말일까? 종합주가지수 2,530.7에는 부도 등으로 사라진 기업의 흔적은 없다. 또 기업의 무상감자 과정에서 감내한 주주의 손실도 가려져 있다. 살아남은 기업과 새로 상장된 회사의 성적표다.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다. 기업은 부채를 줄이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경쟁력을 갖춘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외환위기는 한국 증권시장의 투자환경을 점검하는 계기도 됐다. IMF 사태가 금융투자시장에서 투자자 보호와 기업의 주주권익 신장 필요성을 거대 명제로 제시했다. 한국의 금융투자시장은 투자자 보호의 신뢰 수준에서 어느 정도까지 성숙했나? 기업의 주주 우선 경영은 어느 위치에 와 있는가? 2017년 지금도 이 두 가지 질문은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