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뮤지컬 '시스터액트'] 예능감 충만 수녀들의 무대... 한국식 유머 넣은 자막은 '덤'

'실화냐''덕후''겨땀' 등
유행어 활용해 재미 두배

1992년 개봉한 영화 ‘시스터액트’는 흑인 여배우인 우피 골드버그를 주연으로 한 범죄물, 종교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코미디라는 몇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우피 골드버그의 탄탄한 연기와 흥겨운 음악, 통쾌한 줄거리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높은 완성도는 이를 그대로 무대화한 뮤지컬 무대에는 독이 될 수 있다. 실현 장르인 뮤지컬의 특성상 영화를 잣대로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지난 25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시스터액트’는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내한 공연의 정석을 보여주며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뮤지컬만의 감동을 자아냈다.

이번 ‘시스터액트’로 첫 라이선스 내한 공연을 선보이게 된 EMK뮤지컬컴퍼니는 무엇보다 번역 작업에 공을 들였다. 미국식 유머나 은어가 많은 작품의 특성상 배우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자막 작업은 한국 뮤지컬어워즈, 예그린 뮤지컬 어워드 등에서 번역 및 각색 부문 수상을 한 베테랑 번역가 김수빈 씨가 맡았고 ‘어쩌다 어른’ ‘비타민’ ‘스폰지’ 등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참여했던 17년 차 예능 작가인 이선령 씨가 힘을 보탰다.


이렇게 탄생한 기발한 자막은 공연 내내 폭소를 이끌어냈다. 남자친구 커티스의 범죄 현장을 목격한 후 쫓기는 신세가 된 주인공 들로리스가 성당에서 수녀복을 입고 수녀 행세를 하며 지내게 된 장면부터 쏟아지는 은어와 언어유희가 한국식 유머로 매끄럽게 번역됐기 때문이다. 가령 가톨릭의 성호 긋기에 익숙지 않은 들로리스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spirit)’를 읊는 대목에서 원문은 성령(holy spirit) 대신 담배(holy smokes)를 말하지만 자막에서는 이를 ‘성병’으로 대체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로 등장하는 유행어도 적극 활용했다. 아내 신시아의 옷을 선물로 준 커티스를 원망하며 들로리스는 “자기 아내 망토를 줬어. 이럴 수가”라고 말하는 대신 “지 마누라 옷을 줬어. 이거 실화냐”로, 들로리스를 보호해주는 경찰 친구 에디의 별명 ‘땀 흘리는 에디(sweaty Eddie)’는 ‘겨땀 에디’로, 원칙주의자인 원장수녀를 비꼬는 말인 ‘괴짜 종교인(Jesus Freak)’은 ‘예수 덕후’로 매끄럽게 번역했다. 보통 오리지널 내한 공연의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한글 자막을 최고의 장점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배우들의 열연과 수준 높은 넘버들도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외국인 배우들 사이에서도 뒤지지 않는 가창력과 연기를 보여준 김소향 씨는 자기 옷을 입은 듯 견습수녀 메리 로버트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커튼콜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춤을 추고 앙코르에 응해주는 것은 뮤지컬만의 묘미다. 실제로 들로리스 역의 배우 딘 힐은 커튼콜 장면에서 전 공연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등장해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들에게 주옥같은 넘버 한 곡을 더 불러준다. 큰 소리로 ‘앙코르’ 외치는 것을 잊지 말자. 내년 1월21일까지.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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