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2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전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원유금수가 북측 도발을 멈추게 하는 중추적 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 핵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주동력은 원유”라며 “우리는 중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하기 원한다”고 덧붙였다. 안보리는 지난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대북 유류공급을 30%가량 차단했지만 제재가 휘발유 등 석유제품에 쏠려 원유공급은 이전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헤일리 대사는 2003년 중국이 원유공급을 중단하고 얼마 뒤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왔던 사례도 언급했다.
대중 압박 카드로 미국은 북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금융기관들을 독자 제재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추가 대북제재에 대해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긴 목록을 갖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미 재무부가 지정할 추가 제재 대상에 중국 내 은행이 포함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미국은 아울러 대북 해상 봉쇄도 확대할 방침이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새로운 차원의 해상수송 차단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을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헤일리 대사는 이날 긴급회의에서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과 외교·교역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며 “유엔 회원국으로서 북한의 투표권 등을 제한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라고 말했다. 독일 현지 언론은 노어트 대변인이 독일 정부에 “평양 주재 독일 대사를 철수하라”고 요구했다며 이는 미 정부가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끊도록 각국을 직접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독과 영국 정부는 이날 각각 자국 주재 북한 대사를 초치해 북한을 압박했다.
다만 미국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정작 북한 고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과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이날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우하이타오 유엔 주재 중국 차석대사는 “대북제재결의가 적절한 수준의 인도주의적 활동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원유금수 조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도 북한을 비난하기보다는 “12월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 주석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방향으로 발전시키길 원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고 인민일보는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들도 원유공급 중단 등 독자적 추가 제재에 반대해야 한다며 오히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역공을 폈다. 환구시보는 30일 “트럼프 행정부는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북핵 프로그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지만 북한은 핵 개발에 가속도를 냈다”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최악의 실패로 귀결됐다”고 단정했다.
이처럼 중국과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중국을 통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등 ‘군사옵션’도 강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헤일리 대사는 이날 “북한 독재자가 우리를 전쟁으로 더 가깝게 이끌었다”면서 “전쟁이 난다면 북한 정권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실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는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한 발언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새벽 트위터에서 “북한에서 막 돌아온 중국 특사가 ‘리틀 로켓맨’에 아무 영향을 못 미친 것 같다”면서 북한 국민과 군대가 끔찍한 환경을 견디고 있는 점과 러시아와 중국 모두 이번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 점을 언급하며 북한을 비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미주리주 대중 연설에서 김정은을 ‘병든 강아지’라는 새 별명까지 붙여 비난하기도 했다. 병든 강아지(a sick puppy)라는 속어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다시 대북 초강경 태도로 돌아섰다는 관측을 뒷받침했다. /뉴욕=손철특파원 베이징=홍병문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