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아버지의 문학이 잊혀지는 안타까움, 비로소 사그라지네요"

조정래 '가족문학관' 전남 고흥에 개관
趙작가·부친 조종현·부인 김초혜의 작품 등 한곳에
"아버지, 고난속 문학 지키셨는데...불효로 인한 회한 풀려"

소설가 조정래(오른쪽)와 아내인 김초혜 시인이 30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서 개관한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 전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문학관 전경. /사진제공=해냄출판사·연합뉴스
한국 문학사가 대하소설을 위한 장(章)을 특별히 마련한다면 조정래는 박경리와 더불어 그 장의 맨 윗자리에 거론돼야 마땅한 이름이다. 조정래(74)가 이야기꾼의 입담과 역사가의 밝은 눈, 예술가의 손맛으로 완성한 ‘현대사 3부작(태백산맥·아리랑·한강)’은 우리 문학사에 축복처럼 쏟아져 내렸다. 물론 이런 성취의 8할은 작가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조정래를 둘러싼 환경을 살펴보면 현대사 3부작을 함께 일군 보이지 않는 조연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된다. 바로 조정래의 가족들이다. 그의 아버지인 고(故) 조종현(1906∼1989) 선생은 승려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자 한국 시조의 부흥을 일으킨 문인이었다. 그리고 반려자인 김초혜(74) 시인. ‘사랑굿’으로 유명한 김초혜는 그 자체로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정래의 곁에서 끊임없이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이자 동반자였을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로, 남편과 아내로 문학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수놓은 업적을 기리기 위한 가족문학관이 30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 문을 열었다. 정식 명칭은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이다. 가족문학관 설립은 국내 최초이며 조정래 작가 개인으로는 ‘태백산맥 문학관(전남 보성)’, ‘아리랑 문학관(전북 김제)’에 이은 세 번째 기념관이다. 고흥은 조종현 시인의 고향이다.

조정래 작가는 이날 오후 열린 개관식에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했는데 저는 아버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문을 열었다. 감정이 복받친 듯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던 작가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그는 “아버지는 엄청난 고난 속에서 문학과 종교를 지키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오신 분이다. ‘태백산맥’의 범일 스님이 아버지의 모델”이라며 “제 책이 잘 팔려서 ‘이제야 효도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 시점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나의 불효와 함께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버지의 문학이 잊히는 현실이 안타까워 회한은 점점 깊어만 갔다”며 “2년 전 아버지의 전집을 발간한 고흥군이 먼저 나서서 가족문학관을 지어보자는 제안했을 때 저의 불효로 인한 회한이 비로소 사그라지는 듯한 고마움과 황홀한 감동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조정래는 “아버지가 아마 저승에서 ‘아들 키운 보람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다”며 다시 한번 말끝을 흐렸다.

작가는 예정보다 가족문학관 완공이 1년가량 늦춰진 이유에 대한 뒷얘기도 들려줬다. 조정래는 “처음에는 아내인 김초혜 시인이 ‘아들 잘 둬서, 남편 잘 만나서 문학관 세운다고 손가락질 하지 않을까’ 염려하더라”며 “아내는 또 ‘이미 당신은 문학관을 두 개나 갖고 있는데 하나 더 세우면 문학관에 미친 사람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며 나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내 말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흥군수에게 문학관 건립을 보류하는 게 좋겠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며 “군수의 거듭된 요청과 아버지의 문학관을 바라는 형제들의 설득으로 결국 다시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조정래는 “국가의 존재 의미를 묻는 ‘천년의 질문’이라는 세 권짜리 소설을 내후년 출간하면 매월 마지막 주에는 문학관이 있는 보성과 김제, 고흥에서 이틀씩 머물며 독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소설가 김훈은 “조종현 선생의 전집을 이번에 읽어 보니 당신의 문학 세계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으로 이뤄져 있더라”며 “조정래 작가가 쓴 ‘태백산맥’의 씨앗이 이미 조종현 선생의 작품들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매우 놀랐다”는 감상을 전했다. 김초혜 시인은 “아버님이 일구신 시조 문학의 뜻을 기리는 고흥군의 뜻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가족문학관은 456.67㎡(138평) 규모로 지상 1층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세 문인의 저작을 비롯해 서예 작품, 육필 원고, 편지, 평론 글, 언론 인터뷰 기사와 문인들이 직접 사용한 필기구, 안경, 찻잔 등 생활용품까지 총 1,274점이 진열됐다. 고흥군이 지난 2015년부터 추진한 가족문학관 건립에는 국비와 도비를 합쳐 총 45억원이 투입됐다. 가족문학관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고흥=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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