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초점] 제목 따라가는 ‘이판사판’…판사가 빠진 ‘판사드라마’

국내 최초로 판사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드라마로 관심을 모았던 ‘이판사판’이었지만, 정작 그 안에 판사는 없었다. 허술한 갈등구조와 지루한 전개가 반복되는 ‘이판사판’은 그저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법정에서 연애를 하는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30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이판사판’에서는 ‘김가영 살인사건’의 피고인인 최경호(지승현 분)가 자신의 친오빠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판사 이정주(박은빈 분)의 고백과, 최경호가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고 자백하는 도한준(동하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진=‘이판사판’ 캡처
회식을 마친 후 판결문 작성을 위해 법원으로 가던 이정주와 사의현(연우진 분)은 ‘김가영 살인사건’의 피해자 김가영의 생전 절친인 서용수(조완기 분)와 마주하게 됐다. 서용수는범인의 차량 뒷 번호로 도한준의 차번호인 1371을 꼽았고,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이정주의 친오빠 최경호가 아니라 도한준이 진범일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과거 최정주였던 이정주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호적을 파고 외삼촌의 딸이 됐었다. 서용수의 증언을 들은 뒤 도한준을 찾아간 이정주는 그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다. 이정주는 김가영이 도한준의 별장 관리인 딸이었음을 지적하며, 과거 그가 폐차를 시켜야 했던 이유를 물었다. 도한준은 대답을 회피했고, 이정주는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할 수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도한준은 “나 아니다. 그런데 나 아니라고 말해도 너는 나 의심할 것 아닌가. 모든 정황이 내가 진범이라고 향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게 김가영 팬티에서 나온 최경호 DNA를 깰 수 있느냐?“고 되물은 뒤 “경거망동하지 마라”고 말했다.

최경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이 점점 커지자 이정주는 괴로워했다. 그는 최경호 재판에 나설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유를 묻는 선배들에게 고민 끝에 “최경호는 내 오빠”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시각 도한준은 제 발로 경찰서로 출두해 경찰에게 “용의자로 조사받으러 왔다. 최경호는 진범이 아니다”라고 자백했다.

‘이판사판’은 오빠의 비밀을 밝히려는 법원의 자타공인 ‘꼴통판사’ 이정주(박은빈 분)와 그녀에게 휘말리게 된 차도남 엘리트판사 사의현의 이판사판 정의 찾기 프로젝트를 다루는 드라마다. 서인작가와 ‘퍽’ ‘초인가족’을 공동연출한 이광영 PD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사진=‘이판사판’ 포스터
수많은 법정드라마 속 판사의 역할은 사건의 끝자락에서 결과를 선언하거나 혹은 극중 인물들의 법정 대립이 치열해 질 때 “정숙하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뿐이었다. 극에서 판사는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들이었으며, 이로 인해 검사나 변호사를 연기한 배우들은 기억에 남지만, 판사를 연기한 배우가 누구인지 기억에 남는 경우는 항상 드물었다. 이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다. ‘유죄와 무죄’를 놓고 자신의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이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검사나 변호사에 비하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판사라는 존재가 드라마에서 크게 그려지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판사와 사 판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판사판’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적지 않았다. 모두가 아는 대로 실제 법정에서의 판사는 드라마와 달리 묵직한 존재감과 재량을 선보이는 존재이다. 하지만 판사는 극을 이끌고 가기에 검사 혹은 변호사만큼 갈등 요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에,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 적합한 직업은 아니다. 신선함을 위해 그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이판사판’이기에 그동안 알 수 없었던 판사들의 고충, 그리고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재미있게 그릴 것이라는 ‘기대’가 안방극장에 가득했다.

애석하게도 ‘이판사판’은 이와 같은 대중의 기대를 보기 좋게 저버렸다. 사건의 판결을 놓고 심도 있게 고민하고 분석을 하는 판사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된 스토리 사이사이에 여러 에피소드가 나오고, 이와 관련해 주인공들이 멋진 문장으로 멋지게 판결하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이판사판’ 중 ‘이판’인 이정주의 오빠 문제에만 스토리가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실제 법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었지만, ‘김가영 사건의 진범은 누구인가’에 지나치게 힘을 주다보니 전개도 스토리도, 캐릭터도 모든 것이 지루해져 버리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법정과 판사에 대한 고증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드라마인 만큼 어느 정도의 과장과 허구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판사복을 벗고 고함을 치는 여주인공이나, 법정에서 흉기를 가지고 인질극을 벌이는 피의자, 그리고 법정의 풍경이 생중계되는 등의 설정들이 지나치게 허무맹랑하고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극중 등장하는 인물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산만하다. 제목은 ‘이판사판’이지만 이판에 비해 사판인 사의현의 존재감과 역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가 ‘이판사판’에서 주로 하는 것은 이정주와의 연애의 ‘여지’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오판연구회 공사판들의 인물들 보다 사의현의 분량과 존재감이 적다는 사실은 ‘이판사판’이 분명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공사판들의 인물 설정 또한 대놓고 ‘유머 역할’임을 보여 주다보니, 그들만 나오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만다. 썰렁한 개그와 더불어 구구절절 사건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공사판 멤버들이 들이 나오기만 하면 드라마가 지루해지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사진=‘이판사판’ 캡처
드라마 안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필요한 요소가 많다는 점은 ‘이판사판’을 이끄는 작가와 연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판사판’의 스토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아무리 배우들이 날고뛴다고 해도 작품이 버리지 못한 한계는 뛰어넘기 어렵다.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판사판’은 좋은 배우들과 재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스스로 이전에 소개됐던 법정드라마의 클리셰에 기대면서 그저 작품을 ‘법정에서 연애하는 판사들의 이야기’로 전락시키고 있다.

현재 ‘이판사판’은 김가영 살인사건의 진범이 도한준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드라마를 이끌고 있다. 문제는 전혀 긴장이 된다거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안방극장은 똑똑하다. 이미 많은 시청자들은 “진범은 도한준이 아닌 그 뒤에 있는 부모님일 것”이라는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도한준이 진범이자 아버지 도진영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자백했다”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추측과 예상이 맞아 떨어져도 문제고, 엇나가더라도 지금까지 전개로 봤을 때 그에 대한 탄탄한 설득력이 뒷받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그 또한 문제가 된다.

판사를 주인공으로 앞세웠지만, 정작 그 안에 판사가 없는 판사드라마 ‘이판사판’. ‘이판사판’은 대체 언제까지 제목을 따라갈 생각일까.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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