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은 한국을 찾을 때마다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간다. 유럽에도 우수한 건강검진센터가 있지만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의료 기술과 의료진 수준이 세계 최고라며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계기는 우연히 한국에서 받은 무릎 수술이었다. 축구선수 출신인 그는 오른쪽 무릎의 연골에 이어 뼈까지 일부 손상되는 심각한 관절염을 수년째 앓았으나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인 메디포스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을 시술받은 후 완쾌했다.
# 지난 2014년 세르지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서울 청담동의 한 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받았다. 외국 정상이 공무가 아닌 개인적으로 휴가를 내 국내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것은 사르키샨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사르키샨 대통령과 아르메니아 정부 고위인사 2명은 프리미엄 건강검진을 비롯해 노화예방 시술까지 받았다. 이들이 8일 동안 한국에 머무르며 지출한 의료비는 1인당 2억원에 달했다. 사르키샨 대통령은 당초 스위스나 태국 병원을 고려했지만 러시아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한국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면서 건강검진 시스템이 ‘의료 한류’의 첨병으로 부상하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편리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으면서 신속하게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다. 하지만 건강검진 상품을 앞세워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 문제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데다 만에 하나 있을 의료사고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허술하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월28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중국인 청리펑씨는 얼굴에 다소 부기가 있었지만 표정은 시종일관 들떠 있었다. 청씨는 “4박5일 일정으로 부모님과 한국을 찾았는데 첫날은 병원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서울을 관광하는 일정”이라며 “부모님은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고 나는 보톡스와 필러 시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청씨의 사례에서 보듯 건강검진이 성형시술에 이어 의료 한류의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사상 최대인 36만명을 기록했다. 2011년만 해도 10만명 수준이었지만 매년 꾸준히 늘어 누적 방문인원도 100만명을 넘어섰다. 진료과목에서는 내과가 2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건강검진도 9.3%로 나타나 외국인의 선호도가 크게 늘었다.
이들이 국내에서 지출하는 진료비도 껑충 뛰었다. 2011년 1,809억원에 불과했던 외국인 환자 진료비는 2013년 4,000억원 수준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8,606억원을 기록하며 누적 진료비 기준 사상 첫 3조원을 넘어섰다. 이 중 건강검진 진료비만도 800억원에 달해 올해는 외국인 건강검진 시장 규모가 1,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외국인들은 국내 병원에서 받는 건강검진을 선호하는 이유로 깨끗한 시설과 간편한 시스템을 꼽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장비에 더해 위생과 청결에도 철저하게 신경을 쓴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2015년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한 대형 건강검진센터는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장비를 철저하게 소독하는 영상이 중국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중국인 고객이 20%가량 늘기도 했다.
정보기술(IT)과 연계한 검사 시스템도 국내 건강검진센터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손목에 부착하는 전자태그(RFID)를 통해 대기시간을 최소화하고 실시간으로 검사단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편의성을 높였다. 외국에서는 일반건강검진 기준으로 반나절 가까이 걸리는 검사시간이 한국에서는 2시간 내외에 불과하고 건강검진 결과를 1주일 내외로 받아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 중 하나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외국인 고객이 늘자 국내 대형병원과 건강검진전문센터도 속속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고 고객 유치전에 나섰다.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는 올해 초 각종 건강검진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김영균 센터장은 “젊은 세대가 PC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쓴다는 점에 착안해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며 “조만간 외국어 서비스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때 2,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건강검진 출시 경쟁을 벌였던 서울 강남구 일대 병원들은 최근 들어 자기공명영상(MRI) 등 고가의 검사가 포함된 건강검진 상품을 선택하면 대장내시경을 무료로 해주는 등 문턱을 낮추고 있다. 검사장비의 성능과 건강검진센터의 시설이 엇비슷해지면서 환자 유치전이 치열해지자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기존 500만원대인 프리미엄 건강검진에서 일부 검사항목을 제외하거나 가족이 동시에 받으면 검사비를 할인해주는 이벤트 상품도 급증하는 추세다. 경희대는 국내 최초로 치과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치과종합검진센터를 내년 3월에 선보일 계획이다.
외국인 건강검진 고객이 늘면서 정부도 오는 2021년까지 한국 병원을 찾는 외국인을 연간 8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의료 한류 5개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건강검진이 의료 한류의 주역으로 자리 잡으려면 해외 환자를 유치할 때마다 음성적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건강검진뿐만 아니라 내과수술·성형시술·피부미용 등 국내 의료계 전 분야에 해당되는 병폐이기도 하다.
건강검진을 관광상품과 연계하는 정책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단순히 건강검진만 받고 돌아가도록 할 게 아니라 다양한 관광상품을 묶은 패키지 상품을 개발해 지속적으로 한국을 찾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수도권 건강검진센터에 편중된 외국인 고객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면 지역 건강검진센터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검진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건강검진센터의 보험 의무화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김지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중국지사장은 “국내로 외국인 고객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로 직접 진출해 우수한 한국의 건강검진 시스템을 알리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의료 한류의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며 “글로벌 의료시장의 중심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바뀌고 의료관광이 대표적인 선진국형 관광모델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유관기관 간의 유기적인 협력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