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 ‘고백부부’ 허정민 “안재우와 싱크로율 80%..20대 모습 그대로”

배우 허정민이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최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고백부부’에서 그가 분한 안재우는 90년대 청춘스타 안재욱과 헤어스타일만 닮았을 뿐 비실비실하고 소심하고 잘 삐치는 ‘지질함의 결정체’였다. 그런 역할을 너무나도 찰떡같고 능청스럽게 연기해내 허정민이 나오는 장면마다 시청자들의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웃음 하드캐리’를 담당한 그 활약상이 ‘또! 오해영’ 때보다 한층 진화한 것 같았다.

배우 허정민 /사진=애스토리 엔터테인먼트


1999년 속 안재우는 과팅에서 윤보름에게 첫눈에 반해 생각에도 없던 응원단에 들어가고, 쿨한 윤보름(한보름 분)의 적극적인 스킨십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순수한 매력을 보였다. 그렇게 만난 C.C 안재우와 윤보름은 바뀐 남녀 역할을 통해 메인커플 마진주(장나라 분)와 최반도(손호준 분) 못지않게 사랑받는 서브커플이 됐다.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스타와 만난 허정민은 아직 ‘고백부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감개무량하다. 드라마가 화제 된 게 내 일같이 기분이 좋았다. 보름이는 이번에 상도 받았는데 괜히 나까지 뿌듯하고 좋더라”고 종영소감을 먼저 말했다.

허정민은 커플 연기를 한 한보름이 지난 28일, 제25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에서 여자 신인상을 수상한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하며 상대 배우에 여전히 애틋함을 보였다. 그는 ‘고백부부’ 종영 이후 손호준, 장나라, 한보름, 이이경, 장기용의 인터뷰 내용을 전부 챙겨봤다고 밝히면서 출연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호준이도 나라 누나도 낯을 가리는 편이었는데 그 때 낯 안 가리는 보름이, 이경이가 우리들을 잘 연결해줬다. 초반부터 술자리를 많이 가지고 친해진 상태에서 연기했다. 그래서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자연스런 연기가 나올 수 있었다. 나라 누나와는 드라마 ‘내 사랑 팥쥐’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오랜만에 만났다. 누나가 참 인성 좋기로 소문났다. 누나가 겉으로는 어려 보일지언정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데서 내공과 아우라가 느껴진다.”

‘고백부부’ 대본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허정민은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고 그룹으로 잘 버무려져 있었다. 모든 요소가 다 너무 재미있었다. 상황도 재미있었고, 청춘들의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그려진 게 좋았다. ‘또 타임슬립이야?’라는 반응이 나올까 걱정도 했는데 믿었던 건, 우리 나이대의 공감대가 충분이 담겨 있었다는 거다. 진부하지 않았다. 하병훈 감독님, 권혜주 작가님께서도 처음부터 워낙 자신감이 있으셨다. 믿음을 심어주셨다.”

배우 허정민 /사진=애스토리 엔터테인먼트


이번 안재우 역할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한 덕에 ‘인생 캐릭터’를 얻었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여태껏 내가 해온 캐릭터와 상반된 캐릭터였다. 그래도 내가 재우와 성격이 비슷해서 불편함 없이 연기했다. 오히려 시청자들께서 스무살 인물을 연기하는 제 모습을 어색해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안재우 캐릭터는 실제 나와 싱크로율 80% 정도가 맞다. 20대에 가졌던 연애 가치관, 소심함 등이 그렇다.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재미있게 찍었다”고 말했다.

1999년을 배경으로 연기하면서 그와 같은 세대인 01학번이었던 허정민은 그대로 옛 추억을 꺼내드는 기분이었다고. “대학 캠퍼스를 가본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그 곳이 촬영장이어서 좋았다. 축제 장면 세팅을 봤을 땐 왈칵 하더라. 파전 안주, 물풍선 등을 보면서 옛 추억이 새록새록 났다. 촬영 내내 행복했다. 바닷가 놀러갔던 것, 미팅 등 추억을 곱씹으며 작품을 남겼다. 촬영하면서 내 경험을 시청자들께 얘기해주는 느낌이었다. 당시 우린 취업걱정이 없었다. 운동장, 무대, 어디서든 술 마시고 자유로웠다. 저희 때가 끈끈한 정이 컸던 것 같다. C.C도 해봤다. 그 때 느꼈던 감정도 이번 연기에 많이 포함 됐다. 그렇지만 재우같이 아주 지질하진 않았다.(웃음)”

허정민은 1999년 스무 살의 안재우로는 비실비실한 체력을 보여주더니 2017년 38세 안재우에서는 근육질로 변신해 뜻밖의 큰 체격 차이로 웃음을 선사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고백부부’ 키워드의 연관검색어로 ‘허정민 근육’이 떠있을 정도다.

“반응 중에 제일 웃겼던 게 보름이가 보여준 거였는데, ‘어떻게 허정민은 근육 옷도 어색하고 마른 몸도 어색하냐’는 반응이었다. 근육 옷도 감독님께서 대놓고 웃기려고 넣은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내 몸에서 조금만 근육이 붙은 거였는데 일부러 마동석 배우처럼 크게 만들었다. 스태프들은 웃고 지나가면서 내 근육 옷을 찔러봤다. 방송 끝나고 연우진은 저한테 ‘언제 근육을 키웠냐’고 놀라서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돈 주면 다 해’라고 뻥을 쳤다. 근육을 키우진 못할 것 같고 대리만족만 했다. 어쩌면 내가 말랐기 때문에 그에 맞게 안재우를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허정민은 또 다른 외적 변신으로 안재욱 헤어스타일을 꼽고는 비스듬하게 내려온 머리가 한 쪽 눈을 찔렀던 고충도 밝혔다. “머리가 눈을 자꾸 찔러서 결막염, 다래끼도 났다. 시야 하나 가리는 게 엄청 힘들더라. 그래서 잘 보면 초반에만 한쪽 머리가 길고 점점 짧아진다.”

배우 허정민 /사진=애스토리 엔터테인먼트


극중 윤보름 역의 한보름과는 2015년 KBS2 일일드라마 ‘다 잘될 거야’ 이후로 또 한 번 커플 연기를 펼쳤다. 허정민은 이미 그 때부터 한보름과 막역한 친분으로 ‘고백부부’에서 수많은 뽀뽀신을 연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전부터 보름이와 워낙 친했고 허물 없이 지냈다. 보름이가 상대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아쉬움 반 다행 반 이었다. 사심 없이 일만 하겠구나 싶었다.(웃음) ‘다 잘될 거야’에서는 내가 두 집 살림을 하는 역할이었는데 이번에는 스킨십이 많았다. 모텔에 같이 누운 장면을 찍으면서 서로 ‘우리가 고백부부다’라고 했다.”

“뽀뽀신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찍었다. 그렇게 많을 줄 몰랐는데 차라리 보름이가 상대역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NG가 나도 ‘그냥 갖다 대’, ‘우린 자본주의 뽀뽀야’라고 했다. 이렇게 많이 했으면 한 번은 설렐 법한데 덧없다고 했다. 보름이와는 형제애 비슷한 애틋함이 있다. 보름이가 아니면 이런 케미를 만들 수 있었을까 싶다.”

허정민은 최근 작품에서 유독 상대 배우와 진한 입맞춤을 연기해 눈길을 끌었다. ‘또! 오해영’에서는 허영지와 화제의 침대 키스신을, ‘고백부부’에서는 한보름과 수많은 뽀뽀신을 선보였다. “신기하다. ‘오해영’ 때는 촬영하면서 전혀 몰랐는데 키스신이 그렇게 야하게 나올 줄 몰랐다. 이번에는 야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했다. 이런 것도 복이라 생각한다. 의외로 모든 여배우와 케미가 잘 어울린다는 반응을 봤다. 배우 한 명한테 연기를 잘 한다는 것도 좋은 칭찬이지만 케미가 잘 맞는 다는 게 최고의 칭찬인 것 같다. 그래도 내가 팀에 융화돼서 연기했구나 싶었다.”

올해 연말 시상식에서 한보름과 ‘베스트 커플상’을 받고 싶은지 묻자 허정민은 “보름이보다 독재랑 특별 커플상을 받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경이가 나랑 베스트 커플상을 받고 싶다고 인터뷰 했더라. 굳이 내가 아니라 다른 분이 상을 받더라도 내 일처럼 기뻐할 것 같다. 이번 드라마에서 이경이 연기에 처음부터 ‘하트 뿅뿅’거리며 빠졌다. 성격도 긍정적이더라. 이경이가 처음에 독재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말끔하게 잘 생긴 애가 망가지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이경이한테 ‘나는 뒤에 빠져있는 역할이고 네가 정말 잘 해야 돼. 나는 서포트 하는 거니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했다.”

토목과 99학번 동기 ‘단무지 삼인방’ 끼리의 케미 또한 ‘고백부부’의 재미였다. 손호준, 허정민, 이이경이 뭉쳐있는 모습이 흡사 ‘세 얼간이’를 보는 듯 엉뚱하고 바보 같지만 유쾌했다. “저희끼리 호흡이 너무 좋았다. 맨날 웃으면서 정신없이 찍었다. 호준이는 정이 많고 사려가 깊다. 이경이는 막내처럼 애교도 잘 부리고 케미가 잘 맞았다. 기용이도 너무 괜찮은 아이였다. 안타깝게 함께하는 신이 별로 없어서 기용이가 항상 ‘나도 끼고 싶어요’ 그랬다. 기용이, 혜정이 막내들이 다 애교가 많고 귀여웠다.”

배우 허정민 /사진=애스토리 엔터테인먼트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아역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해 ‘1%의 어떤 것’ ‘회전목마’ ‘경성스캔들’ ‘대왕의 꿈’ 등 수많은 작품을 연기해왔지만 허정민이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연애 말고 결혼’ 때부터였다. 이후 ‘다 잘될 거야’를 거쳐 ‘또 오해영’이 화제의 드라마로 성공하면서 진가를 인정받고 나서는 ‘내성적인 보스’ ‘고백부부’까지 매 작품의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사실 ‘오해영’이 끝나고 헛헛함이 심했다. 드라마가 너무 잘됐고 흥행도 인정받았다. 다른 대본을 봐도 ‘오해영’ 만큼의 만족감이 안 들었다. 배우면 들어오는 걸 마다하지 않고 연기해야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마음을 빨리 버리고 ‘오해영’에 안주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걱정이 ‘고백부부’를 하면서 저절로 없어졌다. ‘고백부부’는 촬영 자체가 재미있었다. 너무 고맙게도 드라마가 잘 되고 칭찬까지 받았다.”

현재 허정민이 해보고 싶은 연기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고생 안 한 타입의 가벼운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한 번쯤은 굴곡진 인생을 연기해보고 싶다. ‘서울의 달’ 한석규 선배님 역할이나 ‘해피투게더’ 이병헌 선배 역할처럼 소시민을 연기해보고 싶다. 그런데 지질한 역할이 제일 편하긴 하다.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좋다. 내가 열심히 연기했는데 작품 반응이 안 좋은 것보다 작품 자체가 사랑 받는 게 좋다. ‘또 오해영’ ‘고백부부’가 그렇다. 두 작품 공통점은 모든 출연진이 나 혼자 잘 되려고만 안하고 똘똘 뭉쳐서 전체가 잘 보이려 했다. 모난 사람이 없으면 잘 되는구나 느꼈다.”

유독 지질한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허정민은 ‘지질함’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말하며 진지하게 ‘지질 캐릭터’ 분석에 들어갔다. “지질함은 성격, 직업군,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겠다. 변호사 캐릭터가 보여주는 지질함과 의사 캐릭터가 보여주는 지질함이 다를 것이다. 인간이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을 보여주는 게 ‘지질함’인 것 같다. 그런 인물이 초반엔 야유를 받기 마련인데, 나중에 ‘사랑스럽다’고 반응해 주시면 희열을 느낀다. ‘연애 말고 결혼’ 때가 그랬다. 초반엔 인간쓰레기였다가 마지막에 ‘저런 친구가 어디 있냐’고 해주셨을 때 희열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허정민은 ‘고백부부’로 얻은 것들을 떠올리며 시청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고백부부’로 내 추억을 소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안재우는 진짜 내 어렸을 때의 모습이었다. 앞으로 두고두고 고백부부가 추억 속에 남을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작품을 못 할 것 같다. 또 한 번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제작진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백부부’가 언젠간 잊혀 지겠지만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 하겠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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