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발전은 무역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해외시장 진출은 필수다. 한국 무역이 고성장을 거듭해온 요인 중 하나는 자유무역주의가 확산하는 세계적 흐름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기회를 살려왔기 때문이다. 무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개방적 통상환경이 밑거름돼야 하는데 최근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통상환경은 한국 무역에 실질적 위기다.
우리에게 닥친 통상환경 지각변동의 핵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월 한미 FTA 개정협상이 확정되고 이를 위한 국내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국은 한미 FTA 발효 이후 무역적자 급증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한미 FTA 개정협상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보호무역주의 기조 속에서 우리는 다음 다섯 가지 포인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통상정책의 실리적 접근이 중요하다. 특히 이번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는 미국의 공세를 방어하는 수준의 수동적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 전략을 마련하고 반대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둘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자 FTA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11개국은 ‘포괄적·점진적 TPP(CPTPP)’를 표방하며 미국을 제외한 TPP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캐나다와 의견 차이가 있어 TPP가 발효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또한 TPP 정체를 기회로 삼아 조속한 타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아직 눈에 띌 만한 진전은 없다. 이렇게 다자 FTA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익 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두 가지 무역협정 중 우선순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향후 예정된 한중 FTA 서비스, 투자 후속협상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해외기업의 투자·서비스 진출에 많은 제약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서비스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중 FTA 후속협상에서 적극적으로 의제를 발굴하고 중국에 개방 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 중국이 체결한 호주와 뉴질랜드 등과의 FTA 서비스 협상 결과를 참고해 치밀한 협상전략을 짜야 한다.
넷째,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지진을 대비하기 위해 건물의 내진설계가 중요한 만큼 우리도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해 수출시장의 탄탄한 내진설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중앙아시아·중남미·러시아 등과의 FTA를 적극 추진하고 걸프협력회의(GCC)·멕시코 등 협상이 중단된 FTA 협상을 재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디지털 무역’을 잘 활용해야 한다.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디지털 무역은 상대적으로 해외시장 진출 경험 및 여력이 없지만 민첩하고 아이디어로 무장한 중소기업에 새로운 기회다. 여러 국가와의 무역협상에서 디지털 무역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으로 한중일 디지털싱글마켓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통상전략이 필요하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많은 피해를 유발하지만 재난대응 시스템을 잘 구축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통상전략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닥친 혼란스러운 통상환경이 위기지만 민관이 협력해 적절히 대응한다면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