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10월 예비 판정 당시 다른 경쟁국에는 한국(10.09%)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가 부과됐다. 지난해 대미 수출물량 기준으로 1위였던 우크라이나 업체에는 최고 44.03%가 부과됐다. 4위인 스페인 업체에는 32.64%의 반덤핑 관세가 매겨졌으며 이탈리아 업체에는 22.06%가 책정됐다. 하지만 이번 정정 결과 한국산 제품이 해외 업체들을 웃도는 반덤핑 예비 관세를 받으면서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의 대미 선재 수출물량 대부분을 책임지는 포스코에는 특히 뼈아픈 소식이다. 포스코는 지난 9월 미국 인디애나주에 선재 가공센터를 열었다. 포스코가 한국에서 만든 선재를 현지에 동반 진출한 중소기업의 가공을 거쳐 판매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산 선재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최종 판정에서 현 수준의 관세가 부과되면 원자재 가격이 높아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최종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최종 판정에서 선재 세부 품목을 구분해 일반강에만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고급강 생산에 집중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긴 하나 불안감이 커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지에 공장을 지은 만큼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광풍에서 한발 비켜갈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도 어긋났다. 외국인 투자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인디애나주에 공장을 지어 고용을 늘리면 미국이 포스코의 한국산 선재를 까다롭게 다루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한국산 선재 수입으로 인한 자국 철강업계의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한다. 차터스틸 등 미국 철강업체들은 한국 업체의 덤핑 수출로 피해를 봤다며 33.96%∼43.25%의 덤핑관세를 부과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강을 만드는 미국 업체들을 중심으로 한국산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라는 목소리가 컸다”며 “행정 오류를 운운하지만 인상 폭을 보면 국내 산업을 중시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업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철강업계를 향한 미국의 통상압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반덤핑 관세 등을 지렛대 삼아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 실제 미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두고 양국이 힘겨루기하던 올해 상반기 철강 제품 등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반덤핑 조사를 시행한 바 있다. 한 재계 임원은 “한미 FTA 개정을 앞두고 미국이 태양광 패널, 세탁기 등 국내 산업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며 “철강업계를 향한 제재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업계를 비롯해 미국 내 우호세력 등과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세계무역기구 같은 중재기관에 제소한들 최종 판결이 나오는 건 한참 뒤”라며 “현지 공장 진출로 제재 수위를 누그러뜨리려는 시도마저 무산된 상황에서 개별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찮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지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등 미국 안에서도 우리 입장에 공감하는 세력이 있다”며 “정부와 업계가 이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