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②]‘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이 영화인이란 칭호를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

자타 공인 대한민국 천재 스토리텔러 장항준 감독이 9년 만에 ‘기억의 밤’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고,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한 장항준 감독은 “예능보다도, 드라마보다도, 영화가 최고라고 말하는 행복한 영화인”이다.

장항준 감독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어렸을 때부터 영화 감독이 내 일생의 꿈이었다. 한번 배에 탄 사람은 선장이라고 하죠. 죽을 때까지. 한국에 머무를 때가 많지만 선장은 선장이다.”

9년이란 시간 동안 장 감독은 드라마 작업과 연극 작업을 했다.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2010), SBS ‘싸인’(2011), SBS ‘드라마의 제왕’(2012) 등 3편을 하고,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2010)로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스크린 복귀에 9년이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영화 한편 정도 엎어지고, 다른 일을 많이 했다”고.

입담꾼 장감독은 “보통의 크리에이티브라면, 드라마든 뭐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9년이란 시간이 걸리는데, 전 워낙 빨리 빨리 하는 편이라 3편 이상을 했다. 그 사이 사이 영화를 준비하느라 9년이 걸렸다.”는 답변을 들려줬다.

드라마와 연극판에 있으면서도 그는 늘 “난 영화인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진 게 없어도 ‘난 영화인’이란 생각은 늘 변함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없으면 못 버틴다. ‘영화인’이란 단어가 어떤 집단이란 뜻도 있지만 ‘영화를 꿈꾸는 인’ 그런 의미도 있다. 그 의미가 좋았다.”

그가 하나 하나 들려주는 영화 예찬론은 납득이 갔다. 먼저 “저한테 영화 현장만큼이나 좋은 건 없다”고 말한 그는 “방송국과 영화 제작환경은 너무 다르다”고 설명했다.

“우선 방송국은 조직문화이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 반 사전제작이다 뭐다 하면서 촬영여건이 좋아졌다고 해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영화는 표준계약서도 생겨 휴식도 보장되니까 좋다. 물론 드라마 했던 사람은 ”뭐 12시간 안에 하루 촬영을 끝내야 한다?“라며 반문하기도 하더라.”


장감독은 영화 현장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로 “함께 먹을 먹으면서 연대감이 생기는 점”을 꼽았다. 드라마 쪽은 촬영 중간 밥을 모두가 함께 먹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반면 영화현장에선 감독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

“촬영 끝나고 다음 날 아침에 해장국집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 머리 하얀 촬영 감독님이랑 어린 막내까지 모두가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 걸 보면서, ‘나는 영화인이 됐구나’ 란 연대감이 생기더라. 어린 시절 밥 먹다가 감독님 오시면 인사하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멋있더라. 영화 작업을 하면 끝나고 나서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여행도 같이 간다. 그만큼 끈끈해진다. 드라마쪽 사람들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여건이 달라서 그렇다. “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장항준 감독은 “맷집이다”고 답했다. “일 할 때 필요한 맷집, 기약 없는 시간을 견디는 맷집 등 감독에겐 무엇보다 맷집이 중요하다.”



맷집의 간달프, 절대반지라고 칭한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장감독은 “강윤성 감독은 17년간 준비해서 ‘범죄도시’를 내 놓았다. 17년간 칼을 갈고 나온 건 아닌가. 이 분이 회사를 다니면서 한 것도 아니다. 대단하더라. 이번에 알게 된 감독인데, 많이 이야기 나누면서 너무 좋은 분이란 걸 알게 됐다. 일희일비 하지 않는 감독이시다. ‘범죄도시’로 관객이 증명 시켜주지 않았나. ‘끝까지 간다’ , ’터널‘ 의 김성훈 감독도 대단한 분이다. 두 아이 아빠가 공백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나.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1년도 못 버티는 게 이쪽이다.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신 분이라 버틴 것이고 결국 좋은 작품을 들고 나오신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맷집이다. 맷집은 성품에서 나오는 것 같다.”

삶의 지혜를 이렇게 재미있게 알려줄 수 있을까. 영화 현장은 그에게 불안한 전쟁터이고, 세상밖 역시 배급이란 명목으로 내모는 전쟁터였다. 하지만 전혀 차원이 다른 전쟁터였다. 그렇기에 ‘미래가 불안해서 영화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에게 그가 건넨 말들은 더욱 의미 깊을 듯 했다.

“영화하다가 중간에 그만 둔 사람이 많다. 이 작업이 미래가 불안하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회사에 가면 미래가 안 불안하나. 그럼 난 영화 그만 둔 건 찬성. 단 그만둬서 다른 데 가면 훨씬 좋아질 거라 생각하지 마. 그런 기약이 있는 곳은 세상에 없지 않나.”

“회사에 가면 상상하지 못했던 차별, 상명하복, 인간적인 멸시 이런 것들을 경험 할 것이다. 조직생활을 안 해 본 아이들이라 더욱 그게 크게 와 닿을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월급을 준다. 또 다른 전쟁터로 가는 거다. (영화쪽이)내 맘대로 전진 후퇴 할 수 있지만, 저 전쟁터는 후퇴하고 싶을 때, 전진하라고 명령하는 곳이다. 끊임없이 배급을 주면서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가는 사람도 많고, 안 가는 사람도 많다. 갔다가 다시 오는 사람도 있다. ”

장항준 감독의 영화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아마도 쭉. 그에 따르면, 막 입봉한 새내기 감독부터 천만 감독 봉준호 감독까지 모두가 경어를 쓰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곳. 그곳이 바로 영화감독조합이다.

“입봉 감독님을 최고로 존중하는 문화. 이렇게 멋있는 조합이 없다. 진보적이고 평등한 곳이다. 창작을 한다는 이유 만으로 존중 받는 곳, 세상에 없는 그런 곳이다. 영화인으로 오래 오래 작업하고 싶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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