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사이드-7년째 겨울 이어지는 아랍] 독재자 없는 들녘에도 봄은 오지 않았다

예멘 전 대통령 살레, 반군에 피살
튀니지, 실업률 15% 경제난 고조
이집트, 테러 조직 세력 기반으로
리비아는 내전 심해 무정부 지속
유혈분쟁 일상화 민주주의 안갯속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이 후티 반군에 살해당하면서 예멘 사태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된 가운데 중동에 민주주의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됐던 ‘아랍의 봄’의 비극적 결말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불어온 민주화의 봄바람을 타고 수십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독재자들이 줄줄이 권좌에서 쫓겨났지만 7년이 지난 지금 힘의 구심점이 사라진 이들 국가에서는 유혈분쟁이 일상화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심각한 경제난마저 더해지면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하는 테러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랍권 매체들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4일(현지시간) 자신들이 통제하는 알마시라TV와 예멘라디오를 통해 피살된 살레 전 대통령을 지칭하며 “반역자들의 우두머리가 죽었고 그가 이끄는 다수의 범죄 지지자들도 사망했다”고 밝혔다. 후티 반군의 한 소식통은 “살레가 오늘 사나 남부 외곽에서 탈출하다가 살해됐다”며 “우리 대원들이 로켓추진유탄발사기(RPG)로 무장차량을 정지시킨 후 그의 머리에 총탄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살레 전 대통령은 1978년부터 ‘아랍의 봄’ 시위로 2012년 2월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33년간 철권통치를 해왔으며 ‘아랍에서 가장 교활한 독재자’라는 별명을 가진 지도자다.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후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반군 후티와 연대해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활동을 하며 재기를 노려왔으나 한편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 개입에 대해 휴전을 중재하겠다고 밝히면서 후티 반군과 사우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외신들은 살레의 피살로 3년째 이어져온 예멘 내전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BBC는 “중재 능력이 있는 살레의 죽음으로 내전은 더 악화할 수 있다”며 “살레를 지지하는 무장대원들은 반격에 나설 것이며 예멘에서 평화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후티 반군을 견제하기 위한 사우디의 개입도 더 노골화할 가능성이 커 내전 양상이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CNN은 “예멘은 그간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장 역할을 했다”며 “중동에서 세력확장을 꾀하는 두 나라가 어떻게 맞붙을지 예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
한 여성 지지자가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의 사진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사나=AP연합뉴스
다.

아랍의 봄 이후 극심한 혼란에 빠진 것은 예멘뿐이 아니다. 아랍의 봄 발원지인 튀니지는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의 장기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15%에 달하는 실업률 등 경제난이 고조되자 IS에 가입하거나 분신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30년간 독재를 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내쫓은 이집트에서는 2013년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 오르면서 폭압정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정불안을 틈타 테러조직이 세력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IS에 의해 총 305명이 한꺼번에 사망하는 사상 최악의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리비아 역시 2011년 반세기 가깝게 독재를 해온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를 몰아냈지만 내전이 심화하면서 지금까지 정부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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