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책은행이 공기업으로 지정되면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개도국에 대한 고위험 투자나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르면 공기업의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해야 하고 이사회 구성도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해야 한다. 국책은행의 사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외이사들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리스크가 높은 사업이나 해외 대규모 수출 지원, 개도국 경제개발 원조 사업 등에 부정적이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결정을 차일피일 미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단기 성과에 급급해 리스크를 회피하고 시중은행들이 하는 업무만 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경우 해외에 진출하는 대기업들은 물론 이들을 따라 나가는 중소기업들이 납품 기업들의 판로까지 막히는 등 국내 산업의 전반적인 선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방지를 위해 공공기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경영 통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기업은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자금 운영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할 때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받아야 하며 다른 법인에 출자할 때도 기재부와의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한국전력이나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업무가 정형화돼 공기업이 가능하지만 복잡한 금융기법을 구사하는 국책은행을 한전과 똑같은 공기업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500여개에 달하는 공기관을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등 3개의 카테고리로 정해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해 진행하는 경영평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학교수·회계사 등이 투입된 경영평가 위원들이 현실은 외면하고 경영학 이론에만 입각해 달성이 어려운 수치를 목표로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기업 지정으로 임원 급여가 급격하게 감소해 우수 인재들이 입사를 기피하고 조직이 정체되는 부작용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의 자율권을 인정해 일한 만큼 제대로 평가 받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라리 정부가 최고경영자(CEO)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예산도 넉넉히 지급해 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해임하면 되는데 결국 공무원들이 본인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국책은행의 공기업 지정을 두고 기재부와 금융위가 관리·감독 권한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책은행은 금융위의 자체 경영평가만 받고 이사회 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지만 공기업으로 지정되면 기재부의 통제를 받게 된다. 기재부와 금융위는 최근 금감원 분담금의 부담금 지정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