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고용시장 '인구재앙' 본격화

취업자 증가폭 '30만명' 붕괴



내년부터 고용시장에 ‘인구재앙’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는 경기가 개선되더라도 취업자 수가 연간 30만명 이상 늘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고용증가폭의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30만명’이 붕괴하는 셈이다. 위기의 시발점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다. 중장기적으로는 저출산의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5일 발표한 ‘2017년 노동시장 평가와 2018년 고용전망’에 따르면 내년 취업자 수는 올해보다 29만6,000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성재민 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말 기준 경기가 회복 국면에 있을 때 노동연구원이 이듬해 고용전망치를 30만명보다 적게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리나라 인구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은 연간 30만명 이상의 취업자 수 증가폭은 기록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연간 취업자 수 증가폭이) 10만명대로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연구원이 이처럼 잿빛전망을 내놓은 배경에는 베이비부머 은퇴와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증가율 둔화가 작용했다. 사실 올해 고용시장은 베이비부머가 밀집돼 있는 연령인 55~64세가 취업자 수 증가를 견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55~64세 취업자 수(1~10월 평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만5,000명 늘었다. 바꿔 말하면 베이비부머가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았다면 고용절벽은 올해부터 가시화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노동연구원은 베이비부머 은퇴에 따른 고용시장 위축이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고용시장의 주축이 돼야 할 15~64세의 증가율 둔화도 악재다. 15~64세 증가율은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평균 15~64세의 증가율은 전년동기 대비 0.2%에 그쳤다. 이는 21세기 들어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고점에 달했던 지난 2010년(0.9%)과 비교하면 0.7%포인트 추락했다. 전문가들은 곧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이 같은 전망이 경기가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에 기초해 나왔다는 점이다. 노동연구원은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초로 내년도 고용전망치를 산출했다. 한은은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월부터 꾸준히 끌어올려 10월 3.0%까지 상향 조정했다. 비교적 양호한 대외경제 여건과 뚜렷한 세계교역 회복세 등이 국내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경기 개선이 지속되지 않으면 취업자 수 증가폭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단기적으로는 급진적인 최저임금 인상, 중장기적으로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등이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노동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궤도에 들어선 후 가장 높은 수준인 최저임금 인상률(16.4%)이 고용량 증가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일자리안정자금 집행 등을 통해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낸다면 부정적 영향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봤다. 극심한 저출산율은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해소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노동연구원은 고용시장에 불어닥칠 ‘인구재앙’을 극복하려면 고령층·여성 등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고용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으로 극명하게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성재민 실장은 “경제활동이 상대적으로 덜 활발한 인구집단의 노동시장 유인을 위한 적극적인 고용대책이 필요하다”며 “청년 취업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자리 간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내년부터 고용시장에서는 노동력 부족 시대를 향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고용시장이 괜찮다, 나쁘다를 가늠하는 취업자수 증가폭 기준선을 현재의 30만명에서 그 아래로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연구원은 올해 취업자 수는 수출확대 등에 힘입어 전년보다 32만4,000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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