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훈 골드만삭스 한국 수석이코노미스트 /사진=이호재기자.
“한국의 반도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와 같습니다. 설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반도체 시장의 독점적 지위인 삼성전자(005930)에는 큰 영향이 없습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한국 수석 이코노미스트(전무)는 5일 반도체 업황이 내년에도 꾸준한 호조세를 이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모건스탠리·JP모건 등의 반도체 시장 성장세 둔화 우려와 상반된 전망이다. 권 전무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에만 사용됐던 반도체 수요가 소위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기업들의 서버나 클라우드컴퓨팅 수요로 확대되고 있다”며 “수요 둔화는 3·4분기 메모리 반도체 재고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 전무는 “현재 세계 경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이끌어가며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ICT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상으로 이런 추세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라며 “한국은 4차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반도체 업종의 내년 수출 증가 기여도는 전체 수출 증가의 4분의3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나친 쏠림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권 전무는 “중국의 철강 가격 상승에 따라 한국 철강이 수혜를 입을 것이고 화학·정유·OLED 등 비반도체 산업의 전망도 전반적으로 밝다”고 답했다.
거시경제 회복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다. 권 전무는 “세계 경제 성장률은 올해 3.7%에서 내년 4.0%로 증가하고 한국도 내년 경제성장률이 3.1%로 높아질 것”이라며 “세계 실물투자 증가율은 4% 중후반대로 2012년 이후 최대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재정지출 확대로 소비 증가, 임금 상승, 관광 산업 활성화 등도 성장률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는 “현재 예상되는 성장률과 환율 추세에 큰 변화가 없다면 내년 중반까지 4개 분기 누적기준으로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사상 처음으로 넘어설 것”이라며 “주요20개국(G20) 가운데 9번째,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일본과 호주 다음으로 3만달러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2006년 2만달러에 진입한 후 현재까지 3만달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원화 강세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연말 기준 원·달러 환율은 1,060원을 예상했다. 경기회복세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년 두세 차례 인상해 연말 2.0~2.5%가량으로 올릴 것으로 예측했다. 기업 실적도 올해 수준으로 개선세가 지속되면서 코스피지수가 내년 말 기준 2,900선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권 전무는 “내년 기업 수익률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개선될 것”이라며 “환율이 원화 강세가 되고 있지만 반도체 특수에 기업 환경 전체의 악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적 전망을 바탕으로 내년 코스피 예상 수익률은 14% 수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골드만삭스의 한국 경제 전망 언론 브리핑은 3년 만이다. 권 전무는 “그동안 좋은 게 없다 보니 전할 말이 없었다”며 “한국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중국 경제 리스크와 선진국의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 북한 리스크, 미국 보호무역 등의 리스크마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