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로 국제사회의 칭송을 받아왔다. 산업화의 성공으로 원조를 받은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의 반열에 올랐다. 양적 성장의 눈부신 위업을 달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양적 성장에 걸맞게 과연 질적 성장이 뒷받침됐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6년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92개국 중 12위권이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EF) 발표에 의하면 이사회 유효성은 138개국 중 80위, 소액투자자 보호는 109위, 금융시장 경쟁력은 80위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또 올해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자료를 보면 회계감사의 적절성과 이사회 감독의 효과성 모두 63개국 중 63위로 꼴찌다. 아시아지배구조협회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 순위는 11개국 중 8위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각종 지표를 보면 세계 10위권 국가라고 하기에 창피한 수준이다.
각종 국가경쟁력 지표에서 알 수 있듯이 질적 개선 없이 과연 우리나라가 개방경제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몸집이 커졌으면 거기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견제 받지 못한 재벌의 절대 권력이 불투명하게 경영한 결과 정치권에 약점이 잡혀 정경유착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 사태’도 정경유착이 원인이다.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공정한 경쟁 풍토를 조성해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것은 누구도 아닌 기업을 위해서다.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외부감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진일보한 장치가 마련됐다. 기업들은 외부감사 비용이 증가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외부감사비용이 10억원 증가한다면 보이지 않은 기업의 가치는 100억원, 1,0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이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위한 상법 개정안도 통과돼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의 뿌리를 뽑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되는 공정거래법상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개정안도 처리돼야 한다.
재계와 언론, 일부 야당에서는 이들 개정안을 규제 강화라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규제 차원에서 평가해서는 안 되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 인식해야 하는 문제다. 기업의 질적 지표를 높여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장치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