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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은 철강에서 무역장벽을 더 높게 쌓고 있다. 이미 미국의 수입규제(31건) 가운데 철강·금속 관련 조치만도 64.5%(20건)에 달한다. 이는 미국이 한국산 열연·냉연·후판 등 전체의 81%에 달하는 제품에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했지만 한국산 철강의 수입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철강협회가 밝힌 10월 미국의 주요 철강수입국을 보면 보호무역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올해 10월 누적 기준 한국은 미국에 전년보다 1.8% 증가한 332만8,000톤의 철강을 수출한 1위 국가다. 2위인 터키(207만톤)보다 무려 130톤가량 많다. 일본은 130만톤을 수출해 3위지만 전년과 비교해서는 수출물량이 17.4% 감소했다. 미국에 수년간 수백%의 반덤핑 폭탄 관세를 맞아 현지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진 중국은 수출물량이 69만톤으로 한국의 5분의1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한국산 철강에 대한 고율의 반덤핑 예비판정이 줄을 잇는 상황을 볼 때 우리도 중국처럼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길을 걸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실익도 노리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철강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관세가 없는 제품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의적인 해석으로 한국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높은 장벽을 쌓아놓은 철강에 대한 규제를 일부 풀어주는 대신 공세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농산품과 서비스시장 추가 개방, 자동차 규제 철폐 등에서 양보를 얻어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이 철강뿐만 아니라 우리 주요 수출품인 전기전자와 화학제품에도 각각 4건, 3건의 수입규제를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거의 90%의 수입규제가 철강과 전기전자·화학에 몰려있다.
정부는 미국의 수입규제 조치에 WTO 제소 등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절차를 밟는 데만 3년이 걸리기 때문에 피해를 피할 길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제 미국의 변화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정부와 업계가 새로운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조업 부활’을 외치는 트럼프 정부는 이제 수익이 안 되더라도 철강과 화학 등 기간산업은 유지하는 쪽으로 전략을 짰다는 조언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 대외부총장은 “한미 FTA 재협상이 끝나더라도 미국의 행보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바뀐 통상환경에 맞춰 새 대응책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도 현실을 직시하고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는 지난 9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철강분야 협의를 하는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수출을 확대하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구경우·김우보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