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관계자는 7일 “연내 타결을 목표로 했던 이스라엘과의 FTA 협상이 정착촌 원산지 인정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며 “정착촌을 원산지로 해주면 아랍 국가들이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정착촌은 과거 개성공단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한미 FTA에서 우리나라는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의 특혜 관세 적용을 미국 측에 요구한 바 있고 한중 FTA에서는 이를 인정(역외가공지역)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정착촌에서 만든 제품도 이스라엘의 원산지로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착촌의 원산지 인정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정착촌을 원산지에 넣어주면 해당 지역 점령을 우리나라가 공식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1967년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해 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동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이후 이곳에 정착촌을 건설해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럽연합(EU)의 반대에도 10월 서안 지역에 3,000채 규모의 대규모 정착촌을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자동차는 FTA의 최대 수혜주로 거론돼왔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이스라엘의 국내 자동차 시장 규모는 30만2,498대다. 이 중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현대차는 이스라엘에서 3만6,478대를 팔아 점유율 13.2%를 기록했고 기아차는 3만5,313대(12.8%)를 판매했다.
첨단 기술 협력에 대한 기대도 많았다. 이스라엘은 인구 800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중동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정도로 벤처와 첨단기술이 발달했다. 현대차는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자율주행자동차 기술개발 회사인 모빌아이와 협력하고 있고 내년 초에는 이스라엘에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세울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막판에 정착촌 원산지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연내 타결 전망이 높았던 FTA 협상은 안갯속이다. 원산지 처리방향에 따라 원유 문제를 비롯해 아랍 국가와의 교역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하마스 같은 무장단체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산업부는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문제처럼 정착촌 원산지 문제도 아랍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며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정한 게 없다”고 밝혔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