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송년회 시즌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다. 과거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평소보다 음주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들과 한 해의 고마움을 담아 나누는 술 한잔은 각별한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회적 음주’는 사람들 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하고 서로를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즐길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음주를 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어지는 송년회에서 거듭 과음하다가는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순간적인 실수도 잦아진다. 다음날 출근해서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술도 지혜롭게 마실 필요가 있다.
◇과음·만취, 간 손상으로 이어져=전문가들이 말하는 현명한 음주의 핵심은 ‘적정량만 마시는 것’이다. 당연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적정량’이 제각각 다르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 몸속에 들어온 알코올의 90%는 간에서 생성되는 알코올 분해효소(ADH) 등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 화학물질로 바뀌는데 이 물질이 바로 우리에게 취기를 느끼게 하는 주범이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속에 쌓이면 얼굴이 빨개지는 ‘알코올 플러시 반응’이 나타나고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아세트알데하이드도 몸속 알데하이드분해효소(ALDH)의 작용에 의해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바뀐다. 다만 사람마다 가진 효소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주량’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간 손상 등 건강을 해치는 알코올의 양은 각자의 주량과는 상관이 없다. 누구나 알코올 30~50g 정도가 몸속으로 들어가면 간 손상이 시작되는데 일반적으로 남자는 소주 5잔, 여자는 2~3잔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보다 더 많이 술을 마실 경우를 과음으로 간주한다. 또 성인 남성(체중 60㎏ 기준)이 하루에 대사할 수 있는 알코올의 양 역시 하루 80g 내외로 소주 한 병 정도에 불과하다.
자신의 체중·주량을 넘어 과음하게 되면 간 손상 등 건강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간은 알코올과 같은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기능을 하는데 지나친 음주로 간 손상이 이어지면 알코올성 간염, 지방간 등에 시달리다가 급기야는 간이 굳는 간경변까지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음주에 따른 간 손상은 80%까지 진행해도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는 경우가 많다. 임형준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 건강을 한번 나빠진 후에는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좋은 음주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물 많이 마시고 흡연 삼가야=술 마실 때 물을 많이 마시라는 것도 빠지지 않는 조언이다. 물을 마시는 만큼 위와 장 속의 알코올 농도가 낮아지고 알코올 흡수율도 떨어지게 된다. 포만감을 느껴 술을 덜 마시고 소변을 통해 알코올도 배출된다. 다음날 숙취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분 섭취는 중요하다. 숙취는 술에 몹시 취한 후 하루 이상 이어지는 특이한 불쾌감이나 작업능력 감소 상태를 말하며 사람에 따라 구역질과 구토감·두통·갈증·어지러움·근육통 등이 나타난다. 알코올은 뇌하수체의 항이뇨 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소변을 자주 보게 하고 대장에서의 수분 흡수를 억제해 탈수를 일으킨다. 탈수 상태가 되면 혈중 알코올 농도는 물론 숙취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혈중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도 더 높아져 숙취 증상도 더 심해질 수 있다.
술자리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체내에 흡수된 술은 폐 호흡을 통해서도 10% 정도 배출이 가능하므로 말을 많이 하면 술을 빨리 깰 수 있다. 음주 시 흡연을 삼가는 것이 좋다. 남효정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는 “술을 마시면 알코올을 해독하기 위해 간에서 산소 요구량이 많아지는데 담배를 피우면 산소가 결핍돼 해독을 방해한다”며 “담배 속 니코틴은 위산 분비를 증가시켜 위장장애를 가중시키고 말초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도 높인다”고 설명했다.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먹는 폭탄주는 과음과 숙취의 주범이다. 남 교수는 “통상 알코올 농도가 15~30%일 때 술이 가장 빨리 흡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맥주(4~5%)와 양주(30% 이상)를 섞어 마실 경우 가장 흡수가 잘 되는 상태가 돼 빨리 취하게 된다”고 말했다.
◇숙취 해소 특효약 없어…‘블랙아웃’ 잦으면 전문가 상담 필요=알코올 해독이나 숙취 해소 문제를 약 한 알로 해결했으면 하는 것이 애주가들의 바람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약은 아직 세상에 없다. 지금까지 숱한 연구자들이 여러 물질과 성분 등으로 실험했지만 특별히 알코올 대사 속도를 높이는 물질은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 2005년 영국의학저널은 “숙취를 예방하며 술을 빨리 깨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모든 전통 의약품, 식품, 민간요법 등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숙취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음을 피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연말연시 이어지는 술자리가 매번 인사불성으로 이어진다면 스스로 알코올 사용장애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알코올 의존증이나 중독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알코올 질환 전문병원인 다사랑중앙병원의 이무형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음주량에 대한 조절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면 술을 마시는 양이나 횟수가 적더라도 알코올 의존증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지난 6개월 동안 취중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블랙아웃)가 2회 이상 발생하면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