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어디로 돌려도 온통 ‘먹방(먹는 방송)’이다. 구석구석 숨은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집에서 간편히 해먹을 수 있는 조리법을 알려주는 방송도 있다. 하지만 식(食)습관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올바른 식습관을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조목조목 일러주는 방송은 아무리 채널을 돌려봐도 찾기 힘들다.
‘식습관의 인문학-우리는 먹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가’는 바로 이런 시청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음식 칼럼니스트인 비 윌슨은 ‘나도 건강해지고 싶지만 야채보다 고기에 손이 가는 걸 어쩔 수 없다’고 낙담하는 이들에게 인간은 잡식 동물임을 상기시킨다.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절대 아니며 노력에 따라 언제든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고 일깨운다. 저자는 전작 ‘포크를 생각하다’를 통해 식당 도구의 발달과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던 인물이다.
책의 전반부는 햄버거와 사탕만 좋아하는 아이의 식습관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모들을 위한 지침서라고 보면 된다. 저자에 따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어린이는 ‘새 음식 공포증’을 겪는다. 말 그대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증상이다. 자녀가 이 공포증을 극복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조금씩 맛을 보여줌으로써 야채와 과일을 좋아하도록 부추기는 방법을 권한다. 채소를 콩알 만한 크기로 잘라 맛보게 한 뒤 이걸 먹어도 아무 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선 확인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공포증이 어느 정도 사라지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노출로 아이가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강요는 절대 금물’이라는 점이다. 부모의 선의에서 비롯된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않은 어린이에게 강압적인 스트레스를 준다면 음식에 대한 반감만 생길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책은 부모가 “채소를 먹으면 사탕을 줄게”라는 식의 보상 전략을 쓰는 것도 위험하다고 귀띔한다. 이런 전략으로 당장은 채소를 먹게 할 수 있지만 결국 아이의 머릿속에는 ‘사탕은 상으로 줄 만큼 귀한 것’이라는 편견만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를 위한 지침서’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책의 후반부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형제·자매의 식습관 유형을 분석한 대목이 눈길을 잡아챈다. 13~16세의 네덜란드인 형제·자매 415쌍을 1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서로의 식습관을 모방하는 경우 나이가 많은 언니가 어린 동생을 따라 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저자는 “10대의 성장 곡선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언니는 다리가 날씬한 동생을 보면서 부지불식간에 동생처럼 먹으면 시간의 효과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인 특유의 식습관을 고찰한 부분도 충분히 재미나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일본 요리는 아시아에서조차 내세울 만한 수준이 안됐다고 한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일본은 외국 요리의 특징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적인 레시피를 발전시켜 건강에도 좋고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음식 문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굶주리는 국민이 없으면서 비만율이 낮은 대표적인 나라로 일본이 꼽히는 것은 처절한 노력과 고민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식습관은 학습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명제는 민족적 차원에서도 유효한 셈이다.
다만 ‘First Bite(첫 한입)’라는 원제를 ‘식습관의 인문학’으로 바꾼 제목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문구 자체로는 그럴듯하고 멋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체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진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간중간 매끄럽지 못한 번역도 ‘옥에 티’로 지적할 만하다. 2만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