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워치]도심 속 단독주택서 정원 가꾸고 뛰놀고…家치를 설계하다

"집안서 쿵쾅쿵쾅…음악 크게 틀어도 신경 안쓰여"
가족 라이프스타일대로 공간 구성…행복감 UP
"자녀와 추억을" 젊은 부부들 '집짓기 열풍' 이끌어
건축 세미나 찾고 동호회 가입…단독주택 열공중

“아빠, 4층으로 물 갖다 줘.”

아들이 2층에 있는 아빠한테 우렁차게 소리를 지른다. “요 녀석아, 나이 한 살이라도 어린 네가 갖다 먹어라.” 아빠도 장난스럽게 맞받는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협소주택을 지어 지난 5월 입주한 진준형씨는 여섯 살 개구쟁이 아들이 2층에서 5층으로 이어진 집안을 쿵쾅거리며 다녀도 걱정이 없다. 아파트라면 층간소음 때문에 어림없는 얘기지만 1층 카페를 제외하고는 진씨 부부와 어린 아들만 있는 이 집에서 위아래층으로 소리를 질러도, 음악을 크게 틀어도, 어린 아들이 종횡무진 뛰어다녀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진씨는 원래 부모님이 살던 40년 된 낡은 단독주택을 허물고 여동생네와 함께 땅콩주택처럼 맞벽건축을 해 집 두 채를 지었다. 지난해 7월 설계에 들어가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완공했다. 1층은 주차장과 자그마한 카페, 2층은 거실, 3층은 부부와 아이를 위한 방 2개, 4층은 서재와 테라스, 5층은 작은 다락방과 테라스로 구성됐다.

진씨는 “단독주택에 사니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직접 지으니 공간을 원하는 대로 구성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면서 화학공학과 교수인 진씨가 작업할 수 있는 서재와 화단처럼 쓸 수 있는 테라스 공간 등 진씨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달라고 부탁했다.

진준형씨가 여동생네 가족과 함께 맞벽건축으로 지은 연남동 협소주택 / 사진제공=오픈스케일건축사사무소


◇집짓기 열풍 왜?=한때 마당 있는 집에 사는 로망을 가진 중장년을 중심으로 전원주택을 짓는 열풍이 불었다가 수그러들었다. 실제 살아보니 기반시설이 부족해 불편이 컸기 때문이다. 도심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집짓기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건축주를 꿈꿨던 평범한 직장인 손창완씨가 만든 주택건축과 관련한 인터넷카페인 ‘실전건축대학’ 사이트는 불과 1년 만에 3만여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이외에도 ‘건물건축꿈꾸는 사람들(건꿈사)’ ‘귀농귀촌귀어-전원생활 집짓기’ 등 인터넷카페도 활성화돼 있다. 개별 건축사사무소들도 예비건축주들을 대상으로 집짓기 세미나 등을 활발히 열고 있다. 최근 집짓기 붐에 힘입어 창간한 단독주택건축 전문 ‘매거진브리크’의 정지연 대표는 “실제 건축사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 앞으로 예비건축주를 대상으로 건축가 초청강연을 열 계획”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업체, 인테리어 업체 등을 이어주는 플랫폼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집짓기 열풍은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우선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에 염증을 느낀 30~40세대가 중노년이 주류였던 단독주택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로 떠올랐다. 이들은 지난 1990년대 초 아파트 문화가 도입된 후 줄곧 아파트에 살았던 세대이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반영된 주거공간에 대한 선호 등으로 단독주택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이 맘껏 뛰놀면서 집에서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특별한 집 짓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엇보다 원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느 집이나 거의 똑같은 구조인 획일적인 아파트와 달리 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을 지을 수 있다. 기성품이 아닌 맞춤옷이 내 몸에 더 잘 맞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독주택의 평면은 단순히 24평이냐 33평이냐, 방 몇 개에 화장실 몇 개로 대표되는 아파트의 평면과 다르다.

주택전문 설계사무소인 AAPA의 문상배 소장은 단독주택 설계는 건축주의 생활을 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설계 의뢰가 들어오면 2주 이상 건축주와 미팅만 합니다. 처음 만나면 2~4시간 정도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듣지요. 어떻게 살아왔고 그동안 살면서 무엇이 불편했으며 왜 집을 짓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특히 그동안 살아온 집에서 어떤 ‘느낌’이 좋았는지를 물어봐요. 예컨대 ‘어릴 적 마루에서 속옷만 입고 뒹굴었던 기억이 남는다’고 하면 그 느낌을 건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공간을 만들까 고민합니다. 건축주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그 가족의 생활을 담을 수 있는 설계가 나오지요.”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완성품이 아니 반제품을 산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진씨 가족들에게 5월에 준공된 이 집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는 봄이 되면 부인가 좋아하는 빨간 줄장미를 4층 테라스에 흐드러지도록 심어 ‘공중 장미정원’을 만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담쟁이도 심어 건물 외벽을 덮을 생각이다. 또 꼭대기층 테라스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자체 생산한 전기로 생활하는 ‘전기 자급자족 하우스’을 꿈꾸고 있다. 그는 “아직 집안 구석구속에 손볼 곳도 많다. 문제가 있으면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다. 내 가족이 함께 완성해간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우리 집’이 돼가는 거 같다”고 말했다.


전문 설계사 “밑그림은 건축주 생활을 담아야

주택은 반제품, 구석구석 손보며 완성품으로”

수도권 택지지구에 5억이면 연면적 60평대 뚝딱

전문 브랜드 시공업체 늘고 2년 무상 AS도 가능



◇치솟는 집값, 차라리 전셋값으로 내 집 짓자=나만의 집 짓기의 배경에는 ‘가성비’ 좋은 주택이었던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전세를 전전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경제적 이유도 깔려 있다. 강남권이 아니더라도 20~30평대 아파트 매매가가 6억~10억원씩 하는데다 전셋값도 매매가의 70~9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단독주택 시행 경험이 풍부한 도시공감의 국윤권 대표는 “서울 아파트 매매가면 서울 강북권이나 수도권 택지지구 등에서 충분히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집 짓는 방식도 다양해져 소비자들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 몇 년 전 일본에서 건너온 협소주택의 인기도 도심 내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단독주택 건축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서울 강북권의 부지면적 20평대, 연면적 50평대 협소주택의 경우 10억원 이하, 수도권 택지지구 단독주택지에서는 연면적 60평대, 방 4개 정도의 주택은 5억원 선에도 지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GS건설이 김포한강신도시에서 분양한 블록형 타운하우스인 자이더빌리지의 경우 전용 84㎡가 4억9,000만~5억7,000만원이었다. 도시공감이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지어서 분양했던 30평대 2층짜리 땅콩주택도 한 채당 4억8,000만원 선이었다.

특히 도심에서 단독주택을 지을 경우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협소주택은 일반적으로 1층에 작은 상가를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주택 일부를 전월세로 돌려 부족한 공사비를 충당하거나 대출금 이자를 내는 데 쓸 수도 있다.

박지현 계이득하우스 소장은 “이제는 젊은층도 서울에서 임대수익을 올리면서 주거공간도 마련할 수 있는 상가주택에 대해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이제 옛말=대부분의 사람이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실천에 못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인들로서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설계·인허가·시공·사후관리까지 직접 챙겨야 해 생업이 따로 있는 일반인들은 공사과정에서 겪은 문제를 풀 시간도 없을뿐더러 전문지식도 부족하다. 오죽하면 “집 지으면 10년은 족히 늙는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러나 이제 단독주택 건축 시장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건축주 및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작아도 의미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 열정적 젊은 건축가들 중 상당수가 주택설계 시장에 뛰어들어 단순설계뿐 아니라 공사 전반의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까지 해주는 경우가 많다. 문 소장은 “건축사 3~5명이 모여 주택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설계사무소 약 20곳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과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내 집 짓기 토크콘서트’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젊은 건축가 3인방인 이동혁·임성재·정다운씨 역시 전원주택만 전문으로 설계한다.

건축주의 마인드도 예전 같지 않다. 무조건 싼 것만 찾지 않고 제값을 주고 건축주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반영된 집을 짓기를 원한다. 이관용 오픈스케일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예전에는 설계랄 것도 없이 동네 집장사를 통해 ‘허가방’으로 불렸던, 붕어빵으로 찍어낸 듯한 도면으로 인허가만 받아주는 곳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그러나 요즘에는 건축사의 기존 작품을 보고 찾아오는 건축주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랜드를 가진 단독주택 시공업체들도 늘었다. 더존하우징·코원하우스·윤성하우징·엔디하임 등 10여개 업체가 전국 단위로 사업을 하고 있다. 영세업체들보다는 시공비가 좀 더 비싸더라도 품질을 믿을 수 있고 AS가 가능한 업체를 고르는 건축주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창립한 꿈애하우징도 첫해 매출 40억원으로 시작해 올해는 190억원까지 성장했다. 김남윤 꿈애하우징 대표는 “2년간 무상보증을 해주고 이후에는 유상수리가 가능하다. AS가 접수되면 48시간 이내에 방문해 처리해주는 등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이제 단독주택 건축과 유지는 예전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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