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강력한 규제에 나설 경우 뒤늦게 뛰어들었던 투자자들의 손실이 우려된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접속 장애로 서버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비티씨코리아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해외 비트코인 가격차 추이
김모(32)씨는 지난주 말 약속도 다 취소하고 집에서 가상화폐거래소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가상화폐 시세만 들여다봤다. 비트코인이 급등한다는 소식에 지난 8일 오전 부랴부랴 몇백만원을 투자했는데 매입 당시 가격보다 30%가량 빠졌기 때문이다.정부의 갑작스러운 가상화폐 거래 규제 강화 움직임과 맞물려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BTC) 가격이 반토막 수준까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가상화폐에 대한 스탠스를 과감하게 정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한 정부가 화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10일 가상화폐거래소 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하면서 새로운 가입자들이 대거 늘었다. 하지만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 중 상당수가 손실을 보고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비트코인은 5일 밤 1코인당 1,400만원 고지를 넘어 8일 10시 2,400만원대까지 치솟았다가 10일 오후1시께 1,400만원대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가상화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정의를 미뤄온 정부가 걷잡을 수 없는 투기적 상황에 섣불리 강공 카드를 꺼내 피해를 키우는 형국이라고 진단한다. 9월부터 ‘정부의 관계기관 합동 가상통화 태스크포스(TF)’는 가상화폐와 관련해 유사수신 사기 처벌 강화와 가상화폐 공개모집(ICO) 금지 등을 잇따라 발표했으나 가상화폐 자체에 대해서는 자산으로도 화폐로도 보기 어렵다며 정의하지 않았다. 이런 탓에 가상화폐거래소 인가제 등 제도권 편입 여부를 놓고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금지를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시장에 엑소더스 우려까지 불거진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일찍이 상품이나 자산·화폐 등 가상화폐의 성격을 정의했어야 했다”며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현재의 투기 바람에 속수무책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정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등 초강경책을 도입할 경우 가상화폐 가격이 불안정해져 연쇄 피해가 우려되기에 투자자들의 손실폭을 줄일 수 있도록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특히 한국은 가상화폐 시장에 투자 수요가 대거 몰리는 바람에 가격 상승과 하락폭이 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 실제 한국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8일 오전10시부터 10일 오후1시30분 사이 한국과 글로벌 비트코인의 가격 차이인 ‘코리아 프리미엄’이 확 빠지면서 세계 시세가 25.7% 하락할 때 한국 시세는 무려 43.6%나 떨어졌다. 정부가 규제 시그널만 보내도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인 것이다.
인호 한국블록체인학회장은 “당장은 기존 금융권이 가상화폐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열어줘 거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며 “가상화폐를 법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규제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논의부터 빠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