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마지막 자동차 제조업체인 GM홀든의 공장 직원들이 지난 10월20일 애들레이드 엘리자베스 공장에서 마지막 생산 차량의 조립 공정을 지켜보고 있다. GM홀든에 앞서 포드·도요타가 대외 환경 악화와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호주 생산라인을 모두 철수했다. /사진제공=GM홀든
호주에서의 자동차 생산은 1925년 미국 포드의 진출로 시작됐다. 이후 호주 자동차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동안 무기를 생산했던 현지 업체 홀든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1931년 인수된 후 1948년 호주 최초의 현지 대량생산 자동차인 ‘홀든 FX’를 출시하면서부터이다. 고가의 수입차를 살 수밖에 없었던 호주의 소비자들에게 현지 생산의 이점을 살려 저가에 출시된 자동차는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호주 정부는 1989년까지 수입 자동차에 57.5%라는 높은 관세를 물리며 현지 자동차 산업에 대한 보호정책을 폈다. 일본 도요타와 미쓰비시가 각각 1963년과 1979년 호주에 진출한 것도 본토보다 호주 현지 생산이 수지에 맞는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호주가 1980년대부터 자유무역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땅 짚고 헤엄쳐온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요 산업인 농산물의 새 수출지 개척의 필요성을 느낀 호주 정부가 교역 상대국의 농산품 시장을 여는 대신 자국의 자동차 시장을 내주면서 수입차 관세는 1999년 37.5%까지 떨어졌고 1997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본격화하자 15%까지 하락했다. 특히 2005년 주요 자동차 생산 거점인 태국과의 FTA 발효는 호주 자동차 산업의 변곡점으로 꼽힌다. 노동자 임금이 호주의 3분의1에 불과한 태국에서 생산된 세계 유명 브랜드의 차량이 저가로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품질·저가의 수입차가 밀려 들어오자 호주 국민들도 ‘국산차’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호주 신차 판매 대수는 118만대로 세계 16위였지만 이 중 90%는 일본·태국·한국 등 호주와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된 수입차다.
경영난에 직면한 자동차 회사들은 2010년대 초부터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으며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노조가 그 앞을 막아섰다. 도요타 노동자들은 ‘3년간 임금을 매년 11% 인상하겠다’는 사측에 맞서 12% 인상을 고수하며 장기간 파업에 들어갔으며 2012년 GM홀든 노조도 3년간 임금 22% 인상을 관철시켰다. 2012년 도요타가 공장 직원 350명을 해고하자 호주 제조업 노동조합(AMWU)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기업이 비용 감축안을 마련할 때마다 노조가 반발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일본계 호주 로펌인 클레이튼 유츠의 가노 히로유키 변호사는 “노조가 기업의 수익이 힘들어도 권리를 주장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노조의 눈치를 보며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호주는 기업별이 아닌 산별 노조 체제로 전국 단위 조직이 있어 정계에 영향력이 강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주의 원자재 수요 증가로 호주달러 가치가 오르는 등 경영 압박이 날로 심해지자 2008년 호주 정부는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GM홀든·도요타 등 현지 자동차 기업에 연간 1억2,000만달러(약1,300억원)씩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문제는 보조금이 ‘고용 안정’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기업의 기술 개발 등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호주 정부는 지난 2014년 발표한 ‘호주 자동차 제조업’ 보고서에서 “정부의 산업 지원이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시장 다양화를 촉진하지 못했다”며 과오를 인정했다.
급기야 2013년 정권 교체로 집권한 보수당은 자동차 업계에 대한 보조금 삭감 결정을 내리며 ‘돈 먹는 하마’였던 자동차 산업 전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보수당은 “보조금 규모에 비해 자동차 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너무 작다”며 “자동차 산업은 보조금에 절인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보조금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빅3 회사는 2013~2014년 모두 ‘호주 조업 중단’을 선언했다.
호주 정부의 자동차 산업 포기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자동차 생산 붕괴가 ‘호주 제조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2008년부터 호주의 제조업 종사자 수는 감소세에 진입했으며 잇따라 해외 브랜드가 이탈하면서 기술 확보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