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11일 오후 12시30분 울산공장 명촌정문을 통해 평소보다 3시간 이른 퇴근을 하고 있다. /울산=장지승기자
현대자동차 노조는 ‘슈퍼 갑’을 넘어 일종의 거대한 권력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소속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최대 지부일 뿐만 아니라 총연맹인 민주노총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대차 노조 자체가 한국 노동조합의 상징인 셈이다. 노동계의 각종 정치·사회적 요구 역시 현대차 노조의 지원이 없으면 강하게 분출되거나 의미 있게 논의되기 어려운 구조다. 때문에 권력 기관처럼 변한 현대차 노조를 사회가 견제하고 감시해야 매년 되풀이되는 파업과 노사대치, 이로 인한 사회적 피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힘의 원천은 인원과 돈”=11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의 힘은 인원과 돈에서 나온다. 현대차 노조는 각종 집회나 유인물에서 ‘5만1,000조합원’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금속노조 조합원을 15만명이라고 봤을 때 이 중 3분의1이 현대차 지부 소속인 셈이다. 이 같이 큰 숫자가 현대차 노조를 떠받치는 힘의 원천이다. 조합비 역시 만만치 않다. 현대차 노조의 1년 조합비는 약 2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돈으로 노조 관련 물품과 서비스도 대거 구매한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하면 도시락 값만 억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이 같은 거대 인원과 예산을 통제하는 막강 파워를 갖는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정치권, 사회 각계 등 사업장 밖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오죽하면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국회의원과 동급’이라는 말까지 돌 정도다.
이러다 보니 노조의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노조 각 계파의 경쟁도 치열하다. 강경 3, 중도 3, 온건 1로 분류되는 현대차 노조 내 7개 계파는 서로 간의 노선이 확연히 다르고 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현 집행부와 계파가 다른 노조 내 조직이 집행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때문에 아무리 온건 집행부라고 해도 타 계파에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측을 향해 강공을 펼칠 수밖에 없다.
차 업계 관계자는 “집행부로서는 파업이든 뭐든 강한 모습을 조합원들에게 한번은 보여준 뒤 임단협 잠정합의를 해야 명분이 서지 않겠냐”며 “그래서 일각에서는 집행부가 파업 지침을 내리면 이를 노사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리 쟁취를 위한 진정한 파업이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액션’으로서의 파업도 벌였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이번 요구안 중 정년 65세 연장 요구도 현 집행부가 고령 조합원들의 지지를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기에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기아차 노무담당 고위 관계자는 “정년 가까워진 조합원들의 표를 많이 받다 보니 아마 빚진 것 같은 압박이 있나 보다”면서 “청년실업이 이렇게 심각한데 현대차가 정년 연장한다면 얘기가 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기울어진 운동장…법도 바꿔야”=이 고위 관계자는 “노조와 협상을 해보면 언제나 노측에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회 통념상 대기업보다는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약자다. 그런데 협상을 해보면 그 반대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조는 파업 찬반투표만 통과하면 다 합법이라는 입장이고 자신들의 전략에 따라 회사와의 협상을 거부하기도 한다”면서 “반면 대체근로 투입 등은 불법이라 사측으로서는 대응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권력화된 현대차 노조에 대한 사회의 견제는 물론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관계자는 “노조 파업 시 대체근로 투입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 의결 조건 또한 50%가 아닌 3분의2 또는 5분의3 찬성으로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사측은 노조에 대한 사회의 건전한 지적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노조 비판 여론이 ‘안티 현대’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대다수 소비자는 현대차 파업 소식을 접하면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런 인식이 결국 ‘노조 도와주기 싫어서 현대차는 안 사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노무담당 고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처음에는 노조를 욕하는데 결국 노사가 공히 욕을 먹게 된다”며 “노조 때문에 안티 현대 소비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현대차 노조에 대한 사회 각계의 감시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한국 차 산업은 앞서 달려가는 일본, 따라오는 중국 사이에 끼어 있다”면서 “후진적 노사관계를 이대로 놓아둔다면 미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