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양재동 코트라 본사에서 기업 관계자 등이 ‘신남방정책 실현을 위한 아세안 시장 진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태근 삼일제약 이사, 이동원 세종이엔씨 이사, 공영학 동성진흥 대표, 김승욱 코트라 경제협력지원실장, 김정주 바이쥬 대표, 이호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 /권욱기자
“우리 기업의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전용 공단 조성과 함께 송금 문제 해결이 절실하다”, “현지에서 국가 이미지를 좀먹고 있는 한인 브로커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이 11일 서울 양재동 코트라 본사에서 마련한 ‘신 남방정책 실현을 위한 아세안 시장 진출방안’ 간담회에서 나온 기업 목소리다. 오는 2020년까지 아세안 나라와의 교역수준을 중국만큼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남방 정책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막연한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라는 고언이 주를 이뤘다. 핼스앤뷰티기업 바이쥬의 김정주 대표는 “중국 소비자가 매우 똑똑해졌지만 동남아 역시 그에 못지않다”며 “10개에 달하는 국가들이 각기 다른 문화·제도·소비 수준을 갖춘 것이 상당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세안이 인구 6억 5,000만명, 2조 3,000억달러(2016년 기준) 규모의 거대 시장인 만큼 치밀한 전략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은 현지 사업환경을 ‘국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일제약의 권태근 이사는 “현지에 진출한 지 10년이 돼서야 쓸만한 정보를 얻었을 정도로 정보가 제한된 시장”이라며 “정부가 아세안 국가의 법규 등을 한국어로 볼 수 있는 작업만 해줘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진흥의 공영학 대표는 “인도네시아에서 5년 전부터 파트너를 구해왔지만, 중소기업이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인력을 구하는 게 매우 어려웠다”며 “정부가 전용공단을 만들어주면 인허가나 인력 채용 부담이 확 줄어들 것”이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공 대표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외국에서 투자해 얻은 이익을 본국에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며 “과실 송금이 가능하게끔 국가 간 조항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세안 시장에서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한국인 교포 등 ‘현지 한국인’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나왔다. 현지 경험이 없는 중소기업이 진출할 경우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꾼’들이 많다는 것. 대기업은 자체 정보망을 통해 꾼들을 걸러낼 수 있지만 사정이 급한 중소기업이나 사업가들은 사기를 당하는 일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권 이사는 “한번 실패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야 하는데 브로커들이 기업인의 실패를 갖고 장난을 친다”며 “결과적으로 한국인 평판이 나빠지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엔지니어링 업체인 세종이엔씨의 이동원 이사는 “정부와 기업이 제대로 협업하면 아세안은 분명한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석탄재를 재활용해 베트남의 연약지반에 적용하는 사업을 추진 중인데 정부 지원으로 현지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며 “베트남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도 석탄 개발이 한창이어서 자원 환경사업 전망이 밝아 보인다”고 예상했다. 김 대표도 “동남아 여성들이 한국 여성을 동경한다는 점에 착안해 프리미엄 핼스앤뷰티 브랜드를 론칭했고 기업 박람회 등에 참석했다”며 “신생 브랜드임에도 현지 홈쇼핑 및 온·오프라인 업체와 계약을 대거 체결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이호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은 “우선 현지 상무관 등을 통해 공식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내년 초 출범할 아세안 한국 상공회의소 연합회도 활용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승욱 코트라 경제협력지원실장은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주요국에 한국투자기업지원센터를 운영 중으로 법규 확인이나 변호사 자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국가별 투자가이드 역시 법과 현실의 차이를 더욱 좁힐 수 있도록 다듬겠다”고 약속했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