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은 내한 공연을 앞두고 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선우예권을 13일 e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뜨거운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주변 시선에 대한) 관심이 덜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누가 뭐라 해도 그냥 제가 갈 길에 전념하면서 나 자신을 믿고 걸어가는 성향”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 순간 책임감과 부담감이 뒤따르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승을 통해 실력을) 한번은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책임의식은 갖되 부담감은 버리고 음악에만 몰두하려고 해요.”
대중의 관심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예술가로서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젓함을 보인 선우예권이지만 조성진과 홍민수, 손정범 등 한국 클래식의 도약을 함께 이끄는 동료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고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감정이라는 것은 공유하고 공존할 때 더 커지듯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 연주자가 많이 있다는 사실이 제게도 긍정적인 자극으로 작용한다”며 “어린 후배들이 더 큰 길을 열어가는 데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선우예권은 15·20일 공연의 프로그램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들로 구성했다. 15일에는 그레인저의 ‘장미의 기사’ 중 사랑의 듀엣,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등을 연주한다. 20일에는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다장조,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제6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30번 등을 선보인다. 자신의 앨범 수록곡이기도 한 라벨의 ‘라발스’는 이틀 간의 공연 레퍼토리에 모두 포함됐다. 그는 “콩쿠르 레퍼토리들은 다 소중하다”며 “슬픈 여운을 길게 남기는 슈베르트는 특히 좋아하는 작곡가”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연주하면 관객들도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선우예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음악적인 영감을 가져다주는 요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 사람과의 만남, 자연 그대로의 모습, 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음악의 자양분이 된다”며 “공연을 위해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도 여러 가지 값진 상념들이 감정을 자극한다”고 귀띔했다. “때로는 혼자 있으며 느끼는 외롭고 쓸쓸한 감정도 소중합니다. 다양한 감정 하나하나가 음악을 통해 더 진실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음악적 자양분을 얻는 것도 무척 중요하고요.”
서른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선우예권은 어릴 적부터 만인의 찬사를 한몸에 받는 ‘신동’과는 거리가 멀다. 본인 역시 “천재나 영재과가 아닌 노력파”라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부지런한 성실성으로 높다란 곳에 도달한 예술가들이 흔히 그렇듯 선우예권도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소박하면서도 의연한 대답을 들려줬다. “20대 후반의 나이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 멀고 이제 막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습니다. 다가올 미래가 마냥 설레고 항상 호기심으로 가득한 음악가로, 그리고 진실한 감정들을 담은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MOC프로덕션·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