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 다양해진 탓에 상영 방식에서 ‘영화’의 정의를 묻는 일도 생겨났고, SNS 속 문제적 발언이 작품 흥행에 큰 장애물이 됐다.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의식, 인권문제가 커지면서 영화계에서도 쉬쉬해왔던 성문제가 폭로됐다.
◆ 천만은 ‘택시운전사’뿐…복병은 多
지난해 ‘부산행’에 이어 올해도 천만 관객을 모은 작품은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뿐이었다. 지난여름 텐트폴 영화로 함께 개봉한 ‘군함도’가 흥행에서 미끄러진 반면, ‘택시운전사’는 누적관객수 1200만 명 이상을 끌어 모으며 역대 9위 흥행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송강호는 ‘괴물’, ‘변호인’에 이어 ‘택시운전사’까지 세 번의 천만 축포를 터뜨리며 ‘국민 배우’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들이 있던 반면, 다크호스로 의외의 기록을 달성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5월에는 ‘보안관’(감독 김형주)이 아재들의 유쾌한 매력으로 250만을 돌파, 8월 개봉한 ‘청년경찰’(감독 김주완)은 박서준과 강하늘의 케미로 560만을 기록, 9월 개봉한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이 설경구의 소름끼치는 연기로 260만을 넘어섰다. 마동석과 윤계상의 선악 대결구도가 통쾌하게 담긴 10월 개봉작 ‘범죄도시’(감독 강윤성)는 680만을 돌파, 올해 한국영화 흥행작 3위에 등극했다. 이들 영화 모두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비수기 가릴 것 없이 장기 흥행했다.
◆ 야심찬 대작 ‘리얼’·‘군함도’, 뚜껑 열자마자 ‘논란’
김수현 주연으로 중국 알리바바픽쳐스와 국내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이 순제작비로 115억 원을 투입한 ‘리얼’(감독 이사랑)은 최진리(설리)의 파격 노출과 논란의 SNS 활동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부정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영화의 난해한 만듦새가 감독 교체로 인한 것이라고 알려지자 관객들은 “김수현 사촌의 100억짜리 습작”이라는 혹평마저 내놓았다. 개봉과 동시에 관람객의 스크린 불법 촬영물이 온라인상으로 퍼져 손익분기점 330만은 커녕 총 관객 47만 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비운의 영화’로 남았다.
CJ엔터테인먼트 야심작 ‘군함도’(감독 류승완)는 220억 물량공세에 일제강점기 소재, 황정민·소지섭·송중기·이정현으로 화려한 멀티캐스팅이 더해져 올해 가장 유력한 천만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개봉 첫날 2천 개에 달하는 스크린 배정으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어났다. 이는 ‘천만 몰아주기’로 비춰져 관객들의 반발을 샀고, ‘군함도’는 결국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는 650만 명 관객 모으기에 그쳤다. 최근 CGV 측은 포럼을 개최해 “전국 스크린이 2700개다. 2천 개를 넘었다고 해서 80% 비율로 점유한 것은 아니었다. 교차 상영까지 치면 5천 개가 넘는 스크린이 있고, 실제 점유율은 37% 정도였다”고 해명했다.
사진=서경스타 DB
◆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옥자’ 논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가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으로 박수 받자마자 뜻밖의 논란에 휩싸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탄생한 ‘옥자’는 넷플릭스 특유의 상영 방식인 온라인 스트리밍 상영과 극장 동시 개봉을 택해 업계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프랑스극장협회는 극장 개봉 3년 후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한 현지 법률을 내세우며 ‘옥자’의 상영과 경쟁부문 진출에 반발했다. 결국 칸영화제에서는 내년부터 프랑스 내 극장 개봉작만 경쟁부문에 초청되도록 하는 이례적 규정 변경 사태가 생겼다.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역시 넷플릭스와 극장 동시 개봉을 문제 삼으며 보이콧을 선언, ‘옥자’는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전국 83개 단관 극장 111개 스크린을 통해 개봉했다. ‘옥자’는 개봉 당일 국내 P2P사이트에서 불법 유출·유통되기도 했지만, 32만 명 이상의 값진 기록을 달성했다.
변성현 감독 /사진=서경스타 DB
◆ “SNS는 인생의 낭비” 변성현 감독의 실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 초청으로 화제가 되자마자 변성현 감독의 SNS 게재글이 논란이 됐다. 다수 커뮤니티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변 감독의 SNS 작성글과 리트윗 글에는 편향된 정치적 발언, 성희롱, 타 영화에 대한 욕설 등이 담겨 있었다. 감독의 충격적 발언에 ‘불한당’ 보이콧까지 발생했고, 영화는 결국 93만 명을 모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영화 팬덤인 ‘불한당원’들의 응원으로 설경구는 뜻밖에 ‘지천명 아이돌’의 인기를 누렸고, ‘불한당’은 뒤늦게 작품 면에서 재평가 받았다.
김기덕 감독, 배우 조덕제 /사진=서경스타 DB
◆ 영화계 性폭력 문제 대두…김기덕, 조덕제 VS 여배우
올해 영화계는 성폭력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다. 김기덕 감독이 성폭력 가해자 혐의를 받은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여배우 A씨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 촬영 도중 김기덕 감독이 ‘연기 지도’를 명목으로 뺨을 때리고 사전 협의 없이 남성 배우의 성기를 만지게 했다며 김 감독을 지난 8월 고소했다. A씨는 사건 이후 영화에서 하차했으며, 김 감독은 검찰에 소환됐을 당시 A씨의 뺨을 때린 점을 인정하면서 “감정 이입을 돕기 위한 행동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이에 검찰은 김 감독에게 벌금 500만 원 약식기소 처분을 내렸다.
조덕제와 여배우 B씨의 성추행 관련 법정공방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조덕제는 지난 2015년 4월 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 도중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 여배우 A씨의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의 강제추행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 판결 이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고 조덕제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황에서 억울함을 주장했다. 장훈 감독이 여배우 측에 서자 조덕제는 촬영기사를 동반해 “지시 받은 대로 연기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점차 각 소속사 측 입장 전달까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 영화인들의 잇따른 비보
갑작스레 고인이 된 이들로 영화계는 비통함에 잠기기도 했다. 20년간 부산국제영화제 번성에 힘썼던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가 지난 5월 칸영화제 출장 중 별세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고인을 기리기 위해 지석상을 신설하는가 하면, 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원로 배우 김지영은 폐암으로 투병 끝에 지난 2월 별세했으며, 윤소정은 6월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애는 췌장암 투병중 지난 7월 작고했다.
지난 10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주혁의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45세 나이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자 모든 연예계와 대중들이 믿기지 않다며 다양한 사인을 제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심각한 머리 손상’을 최종 사인으로 밝혔다.
사진=SBS ‘청룡영화상’ 방송 캡처
◆ 오랜 설움 씻었다…‘눈물의 수상 소감’
76세 나문희가 연기인생 56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재조명해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나문희의 진심어린 연기도 호평 받았다. 나문희는 제1회 더서울어워즈, 제37회 한국영화편론가협회상, 제38회 청룡영화상, 제17회 디렉터스컷어워즈, 제4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그리고 제1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까지 무려 6관왕을 차지, 최고령 수상자로 청룡영화상 무대에 올라 “친구들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 받았다. 열심히 해서 여러분들도 그 자리에서 상 받으시길 바란다”고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말했다.
‘범죄도시’에서 조선족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진선규는 연기인생 17년 만에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삭발투혼까지 한 그는 청룡영화상에서 수상자로 호명되자 한동안 눈물을 쏟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조선족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다”는 말과 함께 감사한 주변인들을 줄줄 읊으며 눈물을 닦는 모습으로 순박하고 진정성 있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여배우 기근 속 최희서는 올해 5관왕으로 영예를 누렸다. 부일영화상, 대종상, 영평상, 더서울어워즈,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은 물론, 주연상까지 획득했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해 8년 만에 빛을 본 최희서는 청룡영화상에서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만큼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담아놓고 싶다”며 벅차오르는 눈물을 보였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