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 "상상력 자극하는 서울…삭막함 이면의 情 담았다"

'빛나-서울 하늘 아래' 출간 기자간담
" 6개월만에 확 바뀌는 역동성 속
빌딩숲 뒤 골목길·작은 카페 등
사람 사이 유대감·정겨움 존재"
'숱한 이야기꾼들 있다'
한국 배경 소설 구상 암시도

“서울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도록,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입니다.”

노벨문학상(2008년)을 받은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14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에서 열린 ‘빛나-서울 하늘 아래(서울컬렉션 펴냄)’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늘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파리와 달리 서울은 6개월 만에 한 장소가 사라지고 생성되는 도시”라며 “10여년간 주기적으로 한국을 오가며 듣고 겪은 이야기와 전설에 꾸며낸 이야기를 더해 서울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한 ‘빛나-서울 하늘 아래’는 그가 수년간 집필 의사를 밝힌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지난 2001년 처음 내한한 후 2007년 이화여대 불문과 통역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강의하며 10년 넘게 한국과의 인연을 맺은 그는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로 통한다. 그런 그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집필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0월에는 제주를 배경으로 쓴 중편소설집 ‘폭풍우’를 발표하며 ‘제주 우도의 해녀들에게’ 헌사를 보내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 ‘빛나’는 전라도 어촌에서 태어나 대학에 갓 입학하며 서울에 오게 된 열아홉 살 여학생이다. 서울에서는 이방인인 르 클레지오와 마찬가지로 빛나는 대도시 서울의 낯설고 삭막한 풍경에 외로움을 느끼지만 불치병을 앓는 40대 여인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서울이라는 도시와 삶에 애착을 느끼게 된다.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빛나가 들려주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그릇 삼아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평화, 이웃 간의 유대감, 생명과 죽음의 교차, 도시의 공포와 구원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아낸다.


두 편의 한국 시리즈 모두 자신의 페르소나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이유도 소개했다. 그는 “나에게는 빛나와 같은 또래인 딸이 둘 있다”며 “덕분에 대다수가 에고이스트인 남성들에 비해 배려심이 많고 자비로운 여성들이 사회·가족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고 웃었다. 그는 또 “특히 서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가 떠올랐고 한강 같은 위대한 여성 작가가 있다는 점도 참고가 됐다”고 덧붙였다.

“버스나 지하철은 도시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믿는 르 클레지오는 집필에 앞서 혼자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서울 곳곳을 누볐다. 신촌과 이대 입구의 골목길, 강남·홍대 등의 번화가는 물론 당산동과 오류동, 인사동, 안국동, 영등포, 충무로 등으로 이어진 그의 걸음은 모두 문장으로 빚어졌다. 그가 특히 흥미를 느끼는 서울의 공간은 번화가 뒤에 숨은 골목길과 언덕길,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북악산과 나지막한 야산들, 북한산 자락의 작은 카페들이다. 그는 “서울 역시 고층 빌딩과 테크놀로지로 인간성 상실을 겪는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작은 카페와 집, 절, 사람들의 유대감, 집 앞마당에서 채소를 키워 먹는 정겨움이 있다”며 “서울을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도시로만 그리는 대신 도시에서 느끼는 공포·죽음 같은 어두운 면도 담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여전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는 숱한 이야기꾼들이 있다”며 이른 아침 파티가 끝난 신촌의 거리에 나타나는 박스 줍는 노인들, 이대 입구 쪽 작은 골목의 점술가, 서울의 택시운전사들을 예로 들었다.

한편 ‘빛나…’는 다음주 영문판 출간에 이어 내년 3월 프랑스의 중견 출판사인 스톡출판사에서 불어판을 출간하며 스페인어·이탈리아어 등 다른 언어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판 번역을 맡은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는 “스톡출판사는 프랑스 기자단과 함께 르 클레지오가 담은 서울의 풍경과 향취를 답사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한국을 찾을 예정”이라며 “앞으로 ‘빛나…’를 들고 한국을 누비는 여행자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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