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세상에 없는 혁신기술 만들면 정부가 사준다

■정부 공공조달 혁신안 발표
정부가 R&D 비용 보전하고 구매 약속하는 ‘경쟁적 대화방식’ 도입
수요처 목적만 제시하면 공급처가 새 기술 제안

정부가 신산업을 육성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예산을 만들어 연구기관이나 학계를 지원할 수 있고, 기업에게는 연구개발(R&D) 자금에 세제 혜택을 줘서 비용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 공공조달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각 부처가 사업을 실행하려면 물품도 필요하고 용역도 구해야 하죠. 이럴 때 보통 ‘나라장터’라고 부르는 전자조달시스템을 이용합니다. 나라장터에 수요처(정부기관)가 필요한 사항을 올리면 사업자들이 기술과 가격경쟁을 벌여 해당 과업을 따내는 식이죠. 이 나라장터를 통해 신기술을 사준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술을 개발할 역량이 있는 업체들이 뛰어들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부가 R&D를 간접 지원하게 됩니다.

지난 11일 정부는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공공조달 혁신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지난해 기준 117조원에 이르는 공공조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혁신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계획인데요, 여기에 신기술 개발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바로 ‘경쟁적 대화방식의 입찰제도’ 입니다.

이 제도는 발주기관은 조달목적과 주요 기능만 제시하고 제품·서비스의 구현 방법은 민간업체가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제안서는 발주기관과 업체와의 협의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농약을 효과적으로 뿌릴 수 있는 농업용 드론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예전 같으면 ‘1분에 농약을 얼마나 뿌릴 수 있는 얼마짜리 미만의 드론’과 같은 식으로 구체적인 제품 규격과 기능을 제시하겠지만, 경쟁적 대화방식은 ‘농약을 효율적으로 뿌리는 기기’ 와 같은 식으로 방법을 확 열어두는 식이죠. 기술을 가진 업체들은 저마다 새로운 방식을 제안합니다. 드론이 될 수도 있고 땅속에 장치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전에 없던 신기술을 업체들이 제시하면 수요처는 이 중 5개 업체정도를 선정해 다음 과제를 부여합니다. ‘2개월 뒤까지 기존방식보다 속도를 20% 줄여라’ 같은 식이죠. 이렇게 단계를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2곳의 업체와 실제 계약을 맺는 게 경쟁적 대화방식입니다.


이 방식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최종 기술 개발 시 수요처가 해당 제품이나 용역을 구매한다는 거죠. 세상에는 무수한 기업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지만 대부분 시장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건데요, 이 방식은 마지막까지 성과를 낸 경우에는 정부가 반드시 구매를 진행함으로써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은 단계별로 생기는 탈락자들에게 일정 비용을 보전해준다는 점입니다. 최종 선발되지 않더라도 리스크 일부를 국가가 분산해줌으로써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거죠.

한편 정부는 이 방식 외에도 2억1,000만원 미만의 소규모계약에 대해서는 입찰 자격 중 하나인 실적 제한을 폐지하고 물품계약에 적용하는 최저가낙찰제도를 폐지해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제품·서비스가 우수하면 낙찰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조달 전반을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또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창업·벤처기업 제품은 집중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현행 50% 수준인 의무 구매비율을 70%까지 올리기로 했고 1억 원 미만의 물품·용역 계약에 한해서는 창업·벤처기업 위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안도 담겼습니다.

입찰자의 제안서는 전자파일로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중소업체의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했고 신기술·신제품의 공공구매 연계 강화를 위해 우수 R&D에 대해 모든 기관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요건이 완화됐습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이 입찰하면 가산점을 주도록 했으며 취약계층을 30% 이상 고용한 사회적 경제 기업에 대해서는 수의계약을 허용하는 안도 마련됐습니다. 공공조달 입찰 심사 항목에 모성보호, 고용유지 등 사회적 가치 항목도 추가됩니다.

중소기업과 창업기업에 정부 조달은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됩니다. 정부가 공공 구매력을 활용해 신규기업의 판로 개척을 돕고 궁극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만들어주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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