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공화당 세제안이 의회를 통과한다면 미국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세제개편안이 초래할 중장기 효과는 부정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반시설, 과학 연구, 기술훈련, 핵심 정부기관 등에 대한 투자(국내총생산 대비)가 지속적으로 준 데 이어 공공투자마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과거의 투자에 편승해 영원히 달릴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세제개편안까지 통과되면 미래는 더욱 암울해진다.
세제개편안은 향후 10년간 국가채무를 최소 1조달러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실제로 연방세수 손실이 그보다 훨씬 클 것으로 내다본다.
의회가 지출을 삭감하지 않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적자보전에 필요한 합의된 조치를 내놓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예산 삭감이 시작된다.
둘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간에 재량권 지출(discretionary spending) 전망은 어둡다.
수백 개의 서로 다른 프로그램 가운데 도로와 공항, 기술훈련과 직업훈련 프로그램, 건강관리 연구와 공중보건계획 등에 대한 지출이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심각한 지경에 처한 이들 분야에서 또다시 대대적인 예산 삭감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개리 버틀리스가 지적하듯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방정부와 주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들의 공공투자 합산액은 60년래 저점에 놓여 있다.
미국은 한계점에 서 있다. 지난 8월 세계은행(WB)이 50개국을 대상으로 살펴본 결과 앞으로 20년 후 미국은 이들 가운데 충족시켜야 할 기반시설 개선 필요성이 가장 큰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사방을 둘러보라. 미국 도로&수송수단제작협회에 따르면 미국에는 구조적 결함을 지닌 5만6,000개의 교량이 있는데 이들 중 1,900개가 주와 주를 연결해주는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s)에 있으며 하루 총통행건수는 1억8,500만건에 달한다.
또 다른 단체에서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1977년만 해도 연방정부가 국가 전체의 수자원 관련 인프라 투자에서 63%를 담당했지만 2014년에 이르러 이 수치가 단 9%로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공공이익단체인 ‘빌딩 아메리카스 퓨처’에 따르면 미국 최대의 철도운송 허브인 시카고는 교통 정체가 너무 심해 화물열차가 도시를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 후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길다.
미국 정부의 심각한 근시안은 연구기금 축소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이언스지에 최근 게재된 논문은 기초연구에 대한 민간 자금지원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연방지원금 총액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연구개발(R&D)지출이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4% 미만이다.
게다가 상원 세제개편안은 기업의 연구비 지출을 장려하는 세금 크레디트를 폐기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 조항은 상하원의 법안 절충 과정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이런 모든 일은 한국에서 독일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가가 이들 분야의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다. 생체의학연구 지출 부분에서는 중국이 이미 미국을 앞지르는 추월선에 들어섰다는 연구보고서까지 나온 상태다.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온 나는 당시 미국 정부가 제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한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국세청(IRS)이나 연방항공청(FAA) 등에 관한 불만을 들을 때면 “다른 국가의 해당 기관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직접 겪어본 적이 있느냐”며 되받아치고는 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비판과 의회의 미시관리(micromanagement), 자금 부족 등으로 이들도 결국 타격을 입었다. 현재 IRS는 겨우 기본 골격만 남아 있다. 연방통계국은 디지털화를 준비하고 있으나 부족한 예산으로 필요한 많은 테스트를 건너뛰어야 할 판이다.
FAA는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해당 기관에 비해 테크놀로지 개선 면에서 뒤처졌다. 역시 예산난과 불확실성이 문제다. 이런 예는 한 두건에 그치지 않는다.
재원 부족 외의 다른 심각한 문제도 적지 않다.
미국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경비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대공황기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기를 거치는 동안 위기의식과 경쟁심이 미국인의 관심을 한곳으로 집중시켰고 기반시설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초당파적인 양당 합의를 끌어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고 많은 국가가 이들 인프라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한 현시점에 미국이 극단적인 당파심과 미래 성장에 필요불가결한 투자를 고사시킬 몰지각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받아들인 것은 아이러니다.
아마도 한 세대 만에 최악의 법안으로 꼽힐 세제개편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서서히 부서져 내리는 미국에서 불명예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