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파이낸스2018] 금융사 팔 비틀기 구태 반복..외국인주주 집단소송도 우려

法근거 없이 수시로 경영간섭
"관치도 주주보호 원칙 지켜야"



우리은행은 새 정부의 생산적·포용적 정책 기조에 맞춰 지난 10월부터 ‘더 큰 금융’을 경영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더 큰 금융 실현 태스크포스(TF)’를 띄우더니 △연체 가산금리 조정 △소멸시효채권 소각 △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별도조직 구축 등의 숙제를 다른 은행들보다 속도감 있게 처리했다. 우리은행은 ‘더 큰 금융’ 100대 과제 중 44개를 불과 2개월여 만에 처리,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민영화에 성공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예금보험공사(18.52%)가 최대주주인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관치(官治)’에 ‘코드금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나 문제는 다른 시중은행들에서도 더하면 더했지 이 같은 일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금융 산업에 드리운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잘 걷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 과거 정부보다 더 관치가 노골화되고 치밀해지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법으로 마련된 규제의 울타리를 넘어 당국이 금융회사 경영에 무시로 간섭하는 구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금융을 하나의 고도화된 독립산업으로 보지 않고 여전히 계도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해묵은 불만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관치는 은행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흉이다. 최근 시중의 A은행은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8조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한 ‘기업구조혁신펀드’에 총 4,000억원을 내놓는다는 내부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이 펀드를 수익성 있게 운영하면 민간투자자(LP)들이 시키지 않아도 돈을 내놓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사실상 전주(錢主) 역할을 할 금융회사들의 반응은 다르다. 한계 중소기업 구조조정에 돈을 묻어 수익을 내기가 쉽겠느냐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돈은 필요한데 혈세 낭비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 금융사의 팔을 비트는 게 하루 이틀 얘기냐”라며 “차라리 장기 예산으로 잡아두고 관리 가능하게 지출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장기소액연체자의 빚을 탕감해주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민간 금융회사가 가진 채권매입 재원을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출연기금으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연체자들이 애초에 돈을 갚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은행들의 부실한 여신심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내세웠다. 금융권에서는 즉각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금융회사도 엄연히 주주라는 주인이 있는데 법적 근거도 없이 준조세를 매기려 든다는 것이다. 외국인 주주들의 집단소송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치에도 주주권익 보호라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핵심 정책과 관련한 금융상품이 쏟아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구태 역시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다.

금융권은 내년부터 진짜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서 1,400조원을 돌파한 가계대출과 증가 속도가 빠른 기업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면 순이자마진(NIM)이 개선돼 은행들의 수익성은 좋아진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금리산정 체계에 적극 개입하면서 기존 상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드사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내년 경영은 올해보다 먹구름이 짙을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으로 조달금리가 높아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기 때문이다. 또 내년부터는 최고금리가 24%로 인하됨에 따라 고금리대출을 더 이상 취급하기 어렵게 됐다. 카드 업계는 금융당국의 연체금리,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으로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금융회사 경영에 개입하고 싶어하는 관치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법으로 마련된 틀 안에서 이런 충동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어야 금융산업 혁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은행권 스스로가 관치에 길들여져 이에 순응하는 게 체질이 됐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관치의 반복을 정부의 욕심만이 아니라 내부 경쟁력을 잃은 은행권이 자초했다는 것이다. /서일범·김기혁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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