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경위를 불문하고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고통받으신 분들에게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조영철 부장판사) 심리로 19일 열린 항소심 결심(結審) 공판에서 김 전 실장은 최후 진술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북한과 종북 세력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공직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왔다”면서도 “제가 가진 생각이 결코 틀린 생각은 아니라고 믿지만, 북한 문제나 종북 세력문제로 인한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인을 비롯해 모든 피고인이 결코 사리사욕이나 이권을 도모한 것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란 헌법적 가치를 위해 애국심을 갖고 성실히 직무수행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는데 한 치의 의심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 행위가 법적 문제가 돼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비서실장인 제게 책임을 물어주시고 나머지 수석이나 비서관들에 대해선 정상을 참작해 최대한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부연했다.
그는 “남은 소망은 늙은 아내와 식물인간으로 4년간 병석에 누워 있는 아들의 손을 다시 한 번 잡아주는 것”이라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평소 제가 문화·예술에 대해 갖고 있던 소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받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했다”며 울먹였다.
조 전 장관은 “제가 부임하기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선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수석으로 있는 동안 소통비서관실이 문체비서관실에서 보낸 명단을 검토한 사실을 알았다면 적어도 정무수석실이 더는 관여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함께 근무한 정관주 전 비서관과 신동철 전 비서관을 두고 “제가 무척 믿고 의지했던 두 분이 여전히 수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가슴 아프다”며 “하늘이 허용해준다면 재직 당시로 돌아가 정무수석실이 관여한 그 순간을 바로잡고 싶다”고 눈물을 보였다.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에게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6년을 구형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조 전 장관은 1심에서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혐의는 무죄로,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고 공판은 내년 1월 23일 오전 10시 30분에 열린다.
[사진=연합뉴스]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