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을 아무도 모르게 만나야 할 이유라도 있느냐” “현안이 산적한 주요 경영인을 청와대 보좌관이 보자면 보고 말자면 말아야 하느냐.”
19일 청와대가 김현철 경제보좌관 주재로 8대 그룹 주요 경영진들을 만나려던 일정을 돌연 취소하자 기업인들이 보인 반응이다. 비공개 일정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이목이 집중된 데 대해 주최자인 김 보좌관이 상당한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알려진 이유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청와대는 삼성·현대차·LG·롯데·포스코·GS·한화·SK 등 8대 그룹 고위임원과 비공개 간담회를 추진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재계 의견을 듣고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까지 확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18일 간담회 개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청와대는 하루 만에 이를 무기한 연기했다. 재계에서는 당초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진행 현대차 사장, 하현회 ㈜LG 부회장, 황각규 롯데 사장, 오인환 포스코 사장, 홍순기 GS 사장, 여승주 한화 사장, 장동현 SK㈜ 사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최고경영자(CEO)인 만큼 어렵사리 자리를 비워놨는데 갑자기 회동이 취소돼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번 해프닝도 현 정부가 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인과 소통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마치 범죄자 집단을 만나는 것처럼 비공개로 몰래 만나야 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대상으로 보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적으로 조율을 마친 준비된 사안이라면 기업인들을 만나는 게 외부에 알려졌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며 “의아스럽다”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재계와 소통하겠다면서 고위 경영진을 ‘소집’하는 방식 역시 구시대적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바람을 맞은 격인 기업으로서는 정부의 입장을 한편으로 이해하면서 썩 유쾌할 리는 없다. 재계의 한 임원은 “정부가 기업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방식이 일방적으로 군기를 잡는 식이라면 구태를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며 “왜 이리 일을 괜스레 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