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270억 달러 비용 절감 가능"...해운업계에 부는 블록체인 바람

데이터 실시간 전달에 보안 우수
머스크 등 글로벌 선사 잇단 적용
자체 연구 개발·컨소시엄 구성 등
현대상선 등 국내사도 도입 적극

농식품을 싣고 부산을 출발해 인도를 거쳐 돌아오는 8,60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최장 6주가 걸리는 여정인 만큼 항해사들은 하루 두 번씩 수십개의 냉동·냉장 컨테이너 온도를 확인해야 한다. 온도 관리가 잘못되면 식품이 곧바로 상하기 때문이다.

화물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송해야 하는 해운 업체에 이는 생명이나 진배없는 작업이지만 이제 몇 년 내 이런 거추장스러운 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장착한 컨테이너가 알아서 냉장 유무를 체크하고 온도도 조절하는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해운사들은 이 데이터들을 블록체인을 통해 전 세계 화주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화주가 보낸 소고기 화물이 전 세계 어느 바다에 몇 도로 운송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운사들은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분석해 비용 절감은 물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실제 지난 3월 글로벌 해운 업계의 공룡 덴마크 머스크라인은 IBM과 손을 잡고 블록체인 기술을 자사 물류 시스템에 적용하기로 했다. 머스크는 컨테이너 1,000만개의 전체 이동경로 추적을 가능하게 만들 계획이다. 블록체인은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내역을 보여주고 거래 때마다 이를 대조해 위조를 막는 방식의 암호체계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도 이 기술을 적용해 해킹을 방지하고 있다.

머스크가 그리는 블록체인 플랫폼의 작동 방식은 이렇다. 화주가 머스크에 선박을 발주하면 그 내용이 거래 과정에 참여하는 상품 제조 업체, 해운사, 항만, 창고, 세관 등에 공유된다. 제품이 이동할 때마다 생기는 데이터 역시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진행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살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보안도 강화됐다. 거래 내용을 대형 컴퓨터나 서버 등 한곳에 몰아넣어뒀던 기존 방식과 달리 해킹하려면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를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운송 과정에서 필요한 세관 서류, 수취증 등의 위·변조 위험까지 줄면서 비용 절감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IBM은 블록체인을 도입하면 세계 컨테이너 해운ㆍ물류 시장 전체적으로 연간 270억달러 규모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머스크가 낯선 블록체인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까지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은 기존 생존전략이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사들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해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을 추구해왔다. 선박을 대형화해 화물을 가능한 한 많이 실어 한 번 운항할 때 드는 비용을 줄이는 전략이다. 하지만 선사들이 잇달아 덩치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선박 공급 과잉현상이 발생, 급기야 적자를 기록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새로운 생존전략이 필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최근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선사들도 블록체인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상선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연구에 돌입해 9월 부산~중국 청두 구간에서 냉동 컨테이너 화물을 대상으로 진행된 시험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른 국적 원양선사인 SM상선도 삼성SDS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해운사들이 선도적으로 대규모 선대 개편을 통해 운임을 대폭 낮춘 탓에 국적 선사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이들이 블록체인 도입으로 비용을 절감하면 운임을 추가로 낮출 수 있는 만큼 국적 선사들도 꾸준히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