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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봐도 사람이 계획에 대해 무망과 대망의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염구(?求)라는 제자는 공자가 말하는 이상이 좋지만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며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공자는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만 가겠다고 미리 선을 긋는 자세라고 지적했다. 공자의 지적이 아무리 적실하다고 하더라도 염구는 처음에 품은 계획을 실현하는 데 버거워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안연(顔淵)이라는 제자는 한번 하고자 한 일이면 끝장을 보는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공자는 안연에게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호학(好學)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안연도 염구와 같은 사람일진대 어떻게 변심하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공자는 변함없는 안연의 비밀을 불천노(不遷怒)와 불이과(不貳過)로 제시한 적이 있다. 불천노는 자신이 느끼는 화를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불이과는 한 번 한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천노와 불이과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려면 지금의 나는 과거에 잘못했던 일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그러한 경험을 떠올려 자신을 바로잡으려고 해야 한다.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도 과거와 함께 살아가고 미래를 계획하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계속 떠올려야 한다. 지금의 삶을 현재와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와 연결해야 밀도가 높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긴장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불이과는 목표 자체가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좋은 수단일 수 있다. 삶에서 긴장은 필수적이지만 한순간도 느슨한 여유가 없다면 숨쉬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보통 안연의 단명 원인을 가난에서 찾지만 긴장도 큰 몫을 차지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과도한 긴장은 생활의 밀도를 굳게 지킬 수 있지만 생활의 활력을 잃을 수 있고 심지어 삶의 의미마저 흐릿하게 한다. 불이과를 수단으로 삼는다면 긴장과 여유의 조화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