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에 날개 꺾인 인천공항 해외진출

30~50년 안정적 수익 이점에도
공기업 예비타당성 조사 족쇄에
입찰 포기하거나 투자액 낮춰
해외 공항 운영권 보유 '0'
12년째 공항평가 1위 무색
"일률적 예타규정 고쳐야" 지적도

공기업이 500억원 이상 자기자본 투자를 하면 무조건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는 규정 탓에 국내 공항 운영사들의 해외 공항 운영권 인수 프로젝트가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외 공항 운영권 사업은 다른 나라 공항의 운영권을 사들여 30~50년 장기간 운영하는 사업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이점이 커 해외 공항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정부가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공기업들의 경쟁력 차이를 무시하고 일률적인 잣대를 고집해 ‘알짜’ 해외 사업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5일 국토교통부와 업계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는 해외 공항 운영권을 한 건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최근 인천공항이 뉴욕JFK공항 운영권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관심이 있다는 정도를 표시한 수준에 불과하다. 인천공항이 12년 연속 세계 공항평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무색하다.



반면 해외 주요 공항들은 타국 공항의 운영권 인수에 적극적이다. 프랑스 빈시 공항은 1995년부터 공항운영 사업을 시작, 칠레·일본·도미니카 등 전 세계 33개 공항 운영권을 인수해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지난해 매출액만도 8,867억원이었다. 독일 최대 공항 운영사 프라포트 역시 공항운영과 상업시설 운영 등을 통해 전 세계 30개 공항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도 러시아·인도·브라질 등 해외 8개 공항을 운영 중이며 중동과 중남미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 1위인 국내 공항 운영사들이 해외 공항 운영권 확보 경쟁에서 밀리는 데는 기획재정부 소관 예타 제도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국가재정법과 이 법의 시행령에 따르면 공기업은 1,000억원 이상의 사업에 500억원 이상 자기자본 투자를 하면 예외 없이 예타를 받아야 한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해외 수주전에서 보통 4~6개월, 빨라도 2개월이 걸리고 통과 여부도 불확실한 예타를 받다가는 헛심만 쓸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아예 입찰을 포기하거나 500억원 미만으로만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세계 최대 규모의 터키 이스탄불 신공항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터키 현지 건설업체 5개사로 구성된 IGA컨소시엄은 인천공항공사에 운영사로 합류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예타가 발목을 잡아 포기했다. IGA컨소시엄은 당시 인천공항에 3,000억~4,000억원의 자기자본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예타를 받아야 하는 기준인 300억원을 훌쩍 넘어 인천공항공사는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경쟁입찰을 해야 하는데 예타를 받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의 내부 정보까지 우리 정부에 제출해야 해 IGA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이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결국 IGA컨소시엄은 인천공항공사 없이 이스탄불 신공항 사업을 수주했고 인천공항공사는 운영 컨설팅을 해주는 데만 만족해야 했다.

지난달 한국공항공사가 에콰도르 3개 공항 운영권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는데 이 사업 역시 500억원 미만의 소규모 사업으로 평가된다. 한국공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해외 사업의 경우 예타는 2개월 내로 단축해서 할 수 있는 조항이 마련되기는 했다”면서도 “발주처에 따라 요구하는 일정이 유동적이라 가능하면 투자 금액이 500억원을 넘지 않는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물론 예타를 받지 않고도 500억원 이상의 투자가 가능하기는 하다. 인천공항공사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세르비아 최대 공항 운영권 인수가 대표적이다. 세르비아 공항의 25년간 공항 운영권은 약 5,000억원 이상으로 예상되는데 인천공항공사는 500억원 미만으로 투자하되 나머지는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들여 채우는 방식으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구조로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더라도 우리 기업에 유리한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경쟁 공항 운영사들도 이러한 점 때문에 2,000억~3,000억원 수준의 자기자본 투자를 통해 수주전에 뛰어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분이 높으면 인천공항공사의 의지대로 국내 시공사나 설계사를 데리고 일 할 수 있지만 지분이 적으면 그만큼 컨소시엄 내에서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이라며 “정부가 혁신성장을 이야기하지만 보수적인 제도 하나 때문에 해외 시장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공기업들은 이 때문에 일률적인 예타 규정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공기업의 해외사업 담당 고위임원은 “공기업의 재무구조나 역량, 산업 여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500억원의 한도를 두는 것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