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노골적 한국산 철강 씨말리기...정부, 결국 WTO 제소로 맞불

[美 무역확장법 232조 압박 현실화 하나]
美 "한국, 보조금 받은 포스코 제품 쓰는 비정상 시장"
내년 232조 발동 땐 한국 연 3조~4조원 시장 사라져
"통상, 외교·안보와 분리" 공감...靑서도 반대 안할듯
무역협 "사후 조치보다 사전 대응으로 AFA피해야"

지난 9월 정부와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미국이 4월 조사에 들어간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보고서에 한국이 중국·베트남과 함께 ‘전면 관세 부과(그룹2)’ 대상에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수입되는 중국산 철강 제품에 500%대의 관세 폭탄을 쏟아부으며 철강 주요 수출국에서 몰아내기도 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제품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폭탄을 부과하거나 수입물량까지 제한하는 초강력 무역제재다. 한국이 이 제재를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정부 당국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조사보고서를 내년 1월 중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4월16일까지 제재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 지역 핵심 산업인 철강 업계의 호소를 외면할 수 없다. 레오 제라드 미 철강노조 위원장은 “사기꾼들은 규제를 우회할 방법을 찾기 때문에 무역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며 미 정부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미납세자연맹과 자동차 업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32조 카드를 테이블 위로 꺼내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은 고율의 관세를 매겨 중국 물량을 쫓아낸 자리에 한국산이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있다. 올해 1~10월 한국은 미국에 332만8,000톤의 철강을 수출한 1위 국가다. 중국산 물량은 69만톤으로 한국의 5분의1에 불과하다. 정부 통상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 물량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면서 미국에 가장 많은 철강재를 수출하는 곳이 한국”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도 수백%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싶은 속내가 있었지만 명분이 부족했다. 미국은 이 때문에 우회로인 무역특혜연장법(TPEA)을 이용했다. 지난해 8월 포스코가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 상무부가 자의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내릴 수 있는 ‘불리한가용정보(AFA·Adverse Fact Available)’를 활용했다. 이를 근거로 미 상무부는 전기료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을 포함해 관세 폭탄(상계관세 57.04%, 반덤핑 3.89%)을 안겼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상무부가 규정한 한국 철강 시장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생산된 포스코의 제품을 쓰는 비정상적인 특정시장상황(PMS)’이다. ‘포스코 AFA 적용→한국 철강 시장 PMS→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는 미국이 내년 초 무역확장법 232조에 한국을 제재 범위에 넣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232조가 발동되면 한국은 연 3조~4조원의 시장을 잃게 된다. 이미 미국이 높인 무역장벽으로 2015년 591만톤이던 철강 대미 수출량은 지난해 395만톤으로 30% 이상 줄어든 상태다.

조치가 발동되면 정부는 미국이 적용한 AFA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해 맞불을 놓을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8월 포스코 열연강판에 AFA가 적용된 후 WTO 제소를 위한 실무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한국은 미국과의 외교·안보 협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관련한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 WTO 제소를 자제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하면 유럽연합(EU) 등 다른 국가들도 한국 철강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임에 따라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WTO 제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다르지만 통상은 외교·안보와 분리해 이익을 추구하자는 입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무역확장법에 따른 무역보복은 제재 주체와 피해 업체가 명확하다. 민간을 앞세웠던 중국의 사드(THAAD) 보복과는 결이 다르다. 따라서 청와대가 외교·안보를 이유로 WTO 제소에 제동을 걸 가능성은 적다.

다행인 것은 10월 미국 법원이 미 상무부가 AFA와 PMS 적용의 근거로 내세운 한전의 산업용 전기료에 대해 “보조금이 아니다”라고 판정한 점이다. WTO 제소로 AFA 조치도 국제법상 논란이 될 경우 한미 철강 분쟁의 양상은 달라진다. 무역확장법까지 연결된 철강 무역보복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무역협회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AFA 적용으로 100%가 넘는 고율의 반덤핑관세 부과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분석보고서를 이날 발표했다. ‘미국의 AFA 적용사례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이 새로 시작한 반덤핑 조사는 총 54건으로 지난 10년 중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한국에 대한 조사가 6건으로 지난 10년 중 가장 많았고 올해 진행 중인 연례재심만도 11건이다.

무역협회는 특히 AFA를 적용한 사례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AFA가 적용된 기업은 2013년 이전까지 한자릿수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2014년 23개, 2016년 29개, 2017년 11월 말 기준 40개로 대폭 증가했다. 아울러 올해 AFA가 적용되지 않은 기업들의 평균 반덤핑관세율은 20.16%였지만 적용된 기업들의 평균은 108.03%로 집계됐다.

미국은 올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덤핑 조사에서 ESBR 고무, 페로바나듐, 변압기, 합성단섬유 등의 품목에 AFA를 적용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우보·구경우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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