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통신망을 제공하는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들과 망 사용료를 두고 논의에 들어갔다. 미국 망 중립성 폐기와 국내의 역차별 논란, 가상현실(VR) 서비스 일반화에 따른 통신 환경 변화를 염두에 둔 결정으로 분석된다. 페이스북은 공식적으로는 망 사용료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전까지 통신사업자들에게 아쉬울 게 없던 페이스북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어서 관심이 쏠린다.
2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페이스북코리아는 최근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등 일부 ISP들에게 페이스북의 망 사용에 대해 원하는 조건을 제시해달라는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ISP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한발 물러난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망 이용 대가와 관련한 입장을 확인해왔다”며 “아직 금액이 논의되는 것은 아니고 의견을 듣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은 앞서 국내 ISP와의 망 사용료 협상에서 고자세를 유지해왔다. SK브로드밴드 등은 페이스북에 캐시서버(인터넷 사용자들이 자주 보는 콘텐츠 데이터를 가까운 위치에 저장하는 서버) 설치와 유지 관리를 위해 망 사용료를 요구했으나 페이스북은 거부했다.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콘텐츠사업자가 서비스를 위해 망 사용료와 같은 대가를 낸 일이 없다는 것이 페이스북의 논리였다.
페이스북이 완강했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은 페이스북에 유통되는 고용량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ISP를 통해 이용해야 할 트래픽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페이스북은 오는 2018년 중 VR 헤드셋 ‘오큘러스 고’를 세계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기는 하지만 VR 등 신규 콘텐츠의 안착을 위해서는 원활한 통신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페이스북에게도 국내 ISP들의 협조를 구할 필요가 생긴 셈이다.
페이스북이 내세우고 있는 망 사용료 납부 거부의 논리가 무너진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최근 망 중립성 원칙 폐기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 국내에서 이어지고 있는 국내 IT 기업과 역차별 논란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네이버는 연 약 700억원, 카카오는 약 300억원을 망 사용료로 내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이번 논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협상의 결과가 페이스북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구글, 넷플릭스 등 다른 콘텐츠 사업자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는 “페이스북은 한국에서 이용자들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중”이라며 “ISP들과는 (망 사용료를 두고) 꾸준히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어떻게 할지는 여전히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