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지난 2008년 뉴욕 헤지펀드 운용사 프로테제파트너스와 내기를 했다. 올해 말까지 액티브 펀드인 헤지 펀드보다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64만달러(약 6억9,000만원)를 판돈으로 걸었다. 미국 국채에 담아 놓은 판돈 64만달러는 10년 새 100만달러로 불어났다. 적어도 국내 펀드 시장만 놓고 본다면 100만달러는 버핏의 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국내 펀드 시장은 설정액 증가와 수익률 면에서 인덱스 주식 펀드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액티브 펀드는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벤치마크 복제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내년 본격적인 종목 플레이 시장이 펼쳐질 것으로 보여 인덱스와 액티브 간의 진검승부는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07년 순자산 기준 63조원을 넘겼던 국내 액티브 주식 펀드의 규모는 올해 말 27조5,136억원(21일 기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해당 기간 기업의 시가총액은 더욱 늘어나 시가총액 대비 액티브 펀드 비중은 8.2%에서 2.0%로 급락했다. 올해 연초 후 액티브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도 6조1,305억원이나 된다. 국내 증시가 오랜 박스권을 깨고 2,500선을 돌파하는 등 상승 랠리를 펼쳤지만 액티브 펀드 환매 행렬은 그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올해 인덱스 펀드에는 최근 1개월에만 2조3,822억원이 몰려 한 해 동안 2조8,979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지난 10년 동안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의 확대로 인덱스 펀드 운용 규모 자체가 꾸준히 증가하며 시총 대비 인덱스 펀드 비중은 1.3%까지 확대됐다.
가장 큰 원인은 수익률이다. 액티브 펀드는 시장 상황과 펀드매니저의 능력에 따라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한다. 특정 주가지수를 쫓아가며 시장 평균 수익률을 달성하는 인덱스 펀드보다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 기대감이 높지만 현실은 달랐다. 올해 인덱스 펀드는 연초 이후 28.26%의 수익률을 달성했지만 액티브 펀드는 17.55%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20%가량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액티브 펀드는 시장 수익률도 쫓아가지 못했다.
수익률 상위 펀드만 봐도 격차는 컸다. 국내 액티브 주식 펀드 상위를 석권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한국헬스케어펀드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펀드가 40% 내외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과 달리 국내 인덱스 주식 펀드에서 미래에셋TIGER200IT레버리지ETF는 수익률이 97.20%에 달했다. 뒤를 이은 삼성KODEX코스닥150레버리지ETF(85.06%), 미래에셋TIGER코스닥150레버리지ETF(82.15%) 등도 수익률 상위권인 액티브 주식 펀드와의 격차가 2배 이상 났다.
코스피200 정보기술지수를 기초지수로 하는 미래에셋TIGER200IT레버리지ETF는 올해 상승 랠리를 견인한 정보기술(IT) 업종의 강세 덕을 톡톡히 봤다. 대세 상승을 이끈 삼성전자와 IT 업종이 인덱스 펀드 천하를 만들었다.
투자자들의 학습효과도 액티브 펀드의 ‘완패’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꼭지’를 잡았다는 학습효과가 액티브 펀드에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해석이다.
내년에도 인덱스 펀드의 상승세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을 제외하면 인덱스 펀드의 성과가 액티브 펀드의 성과를 상회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며 “올해 지수 상승폭이 커지면서 시장의 빠른 대응이 가능한 ETF 투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11월 이후 1개월 평균 수익률은 액티브 펀드가 인덱스 펀드를 소폭 상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액티브의 반격이 가능하다는 말로 해석된다. 시장 상황도 액티브 펀드의 부활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 비중이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한 시장에서 액티브 펀드와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 비교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적어도 올해 말을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점차 축소될 것”이라고 봤다. 이경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자산배분 차원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들이 지수를 복제해 사용하면서 그간 종목발굴로는 수익률을 따라갈 수 없었다”며 “앞으로 벤치마크 복제 비중이 줄어들면서 본격적인 종목 플레이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송종호·김연하 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