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고혈압에 망가진 '내몸의 정수기' 콩팥

노폐물 여과기능 90% 떨어지면 투석·이식 불가피
신부전환자 年 1만2,000명 발생
75%는 당뇨병·고혈압이 주원인
조기 발견하면 완치확률 높지만
기능 70% 손상돼도 증상 못느껴
정기검진, 혈당·혈압관리 잘 해야



영업직 임원 황모(52)씨는 올해 연말 술자리가 유난히 힘들었다. 피로감과 갈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은 황씨는 당뇨병·고혈압 외에도 합병증으로 신장(콩팥) 기능이 10~15% 이하로 떨어진 말기 만성 신부전(콩팥기능부전)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신장이 많이 망가져 술을 끊고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말기 만성 신부전은 혈액 노폐물을 걸러주는 콩팥 혈관꽈리(사구체)의 여과 기능이 크게 떨어져 혈액투석·복막투석이나 이식을 받아야 한다. 황씨는 병원에서 주 3회 혈액투석을 받을 경우 직장생활을 하기 어려워 복막투석을 하며 콩팥이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국내에서 황씨처럼 투석이나 이식이 필요한 신부전 환자는 매년 1만2,000여명이 새로 발생한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혈액으로부터 노폐물과 과잉 수분 등을 제거하는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는 9만명에 이른다. 평균 나이는 60세, 5년 이상 투석 환자가 전체의 45%를 차지한다. 의료기술·장비의 발달로 투석기간은 점차 장기화되고 있다.

황씨가 선택한 복막투석은 환자의 복부에 관을 삽입한 뒤 포도당·녹말이 고농도로 들어 있는 투석액을 복막에 주입하면 복강 바깥쪽 혈액 내 노폐물과 수분을 끌어당기는 방법이다. 혈액 내 노폐물과 수분은 복막의 작은 구멍을 통과하지만 단백질·혈액세포는 통과하지 못한다. 집·여행지 등에서도 투석을 할 수 있고 음식 제한을 덜 받으며 비용도 저렴하다. 자연적인 소변배출도 혈액투석에 비해 오래 유지되고 혈액투석 혈관에 협착·혈전 등의 문제가 생긴 경우에도 투석할 수 있다. 대신 투석액 교환 때나 복부에 삽입한 관을 통한 감염 우려가 있고 스스로 투석액을 교환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손 기능이 좋아야 한다.

투석 치료를 받는 말기 만성 신부전 환자의 90%가량은 주 3회, 매회 4시간씩 병·의원에서 신장 기능을 대신하는 투석기(인공신장기)와 투석막을 이용해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기계를 이용해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려면 많은 양의 피가 빠른 속도로 드나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팔 정맥을 동맥에 연결해 정맥을 굵게 만드는 동정맥루 수술, 혈관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정맥과 동맥 사이에 인조혈관을 삽입하는 동정맥 인조혈관 이식 수술로 혈관을 굵게 만든 뒤 굵은 바늘을 삽입한다.


문제는 혈액투석에 쓰이는 혈관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데 있다. 말기 신부전 환자들은 동맥경화증 등으로 혈관 상태가 나빠 동정맥루 수술을 해도 정맥이 굵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용 중인 동정맥루 또는 동정맥 인조혈관이 좁아지는 협착증이 생기기도 쉽다. 심해지면 혈전으로 혈관이 막혀 투석 치료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중심정맥에 도관(카테터)을 삽입하는데 합병증·불편함과 적잖은 의료비 부담이 생긴다. 따라서 투석 혈관의 협착과 혈전증을 조기 발견하고 적절히 치료해 장기간 혈관 기능이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보건복지부·대한의학회


만성 신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병·고혈압, 콩팥 혈관꽈리에 염증이 생긴 사구체신염이다. 혈당이 높아 몸속 곳곳의 혈관이 손상되고 신장 기능이 떨어진 당뇨병성 신부전 환자가 절반, 고혈압 환자가 25%가량을 차지한다. 매년 6,000명가량이 당뇨병 때문에 신부전으로 악화하는 셈이다. 투석을 해도 5년 생존율이 60%, 10년 생존율이 30%로 떨어질 정도로 예후가 나쁘다. 고혈압 역시 사구체 내 압력을 증가시켜 신장 기능을 서서히 떨어뜨린다.

콩팥은 △몸에서 생기거나 외부에서 몸으로 들어온 노폐물을 걸러내 배설하고 △중요 호르몬(비타민D3 활성화, 레닌 생성, 조혈호르몬 생성) 분비 △세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체액의 산성도·전해질·수분 조절)한다. 기능이 떨어져도 남아 있는 조직을 최대로 가동하는 적응력이 뛰어나 70%가 손상되더라도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이 느끼는 증상은 사구체의 기능을 나타내는 사구체 여과율이 30 미만(정상 90∼120)으로 떨어졌을 때 나타난다. 여과율은 노화에 따라 감소하는데 60 미만이면 콩팥병이 있다고 판단하며 60 이상이라도 연령대 평균치보다 낮으면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콩팥병의 대표적 증상은 고혈압·다리부종·빈혈 등인데 다른 장기의 기능이 나빠졌을 때도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황씨처럼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는 기능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만성 신부전은 3개월 이상 신장이 손상돼 있거나 신장 기능 저하가 지속해서 관찰되는 상태로 소변에 피·단백질 등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5단계로 나뉘며 저염식·체중조절과 혈압·혈당 관리가 중요하다.

콩팥병은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 확률도 높아진다. 진호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콩팥병은 혈압측정과 간단한 소변검사(알부민뇨·혈뇨), 배설 기능을 보여주는 혈청 크레아틴(여성 0.6~0.8㎎/㎗, 남성 0.8~1.1㎎/㎗이 정상이며 수치가 높을수록 기능이 떨어짐) 검사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만큼 위험요인이 있는 사람은 연 1회 이상 검진을 통해 조기발견과 상담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위험군은 △고혈압·당뇨병 환자 △콩팥질환 병력자 △암 환자 △콩팥에 안 좋은 약물 등을 장기 복용한 경우 △출산 때 저체중자 △콩팥 크기가 작거나 한쪽이 없는 경우 △가족 중 콩팥병이 있는 경우 △60세 이상 등이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