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춘천지검장으로 참석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독한 양주에 겁먹은 참석자들이 다들 그 방식을 좋아해 이후 섞어 마시는 음주문화가 퍼졌다”고 대한민국 폭탄주의 유래를 밝힌 적이 있다.
1960~1970년대 미국에 유학 갔던 군인들이 들여왔다는 폭탄주는 1980년대 초 정치계와 법조계·언론계 등에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힘깨나 쓴다는 집단의 은밀한 관행으로 통하던 폭탄주는 이제 우리 사회 술자리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이 된 지 오래다.
주종은 다르지만 조선 후기에 막걸리 한 사발에 소주 한 잔을 부어 마시는 혼돈주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걸 보면 우리의 폭탄주 역사도 원조를 자처하는 구미권의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와 견줄 만하다.
특히 집단주의 문화와 맞물려 급속히 전파됐고 비싸고 독한 양주 대신 ‘서민의 친구’ 소주와 만나면서 20~30대 젊은 층도 즐기는 보편적인 술이 됐다.
회식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경제성’, 참석자들의 동질성을 고취하는 ‘단결성’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폭탄주는 높으신 분들의 ‘망언·추태 시리즈’ 공범으로 지목되면서 부정적 이미지의 아이콘이 됐다.
1999년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진형구 당시 대검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을 시작으로 다음해 이정빈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방송토론에 나가 졸릴 때마다 여성방청객 스커트 속을 봤다”는 망언으로 고개를 숙였다.
2006년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은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당에서 쫓겨났고 지난해에는 열심히 살고 있는 국민을 하루아침에 ‘개돼지’로 만들어버린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특급 망언이 많은 사람들 뒷목을 잡게 했다. 이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는 폭탄주가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에는 주춤했던 송년회가 다시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소식과 함께 또다시 폭탄주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요즘 시대에 술자리 송년회가 웬 말이냐” “꼰대 상사와 폭탄주·건배사는 비호감 3종 세트” 등 볼멘소리가 주를 이룬다.
매해 이맘때면 ‘폭탄주가 다른 술에 비해 건강에 더 나쁘다’ ‘폭탄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얼마’라는 등의 기사도 줄을 잇는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술이든 과음하면 몸에 독이 되고 실수를 하는 건 당연하다.
‘신속과 평등·단합’이라는 폭탄주의 3대 기본이념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나름의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라져야 할 일부의 ‘절제하지 못하는’ 술자리 문화 때문에 비난의 화살을 맞는 폭탄주의 현실이 조금은 안타까운 한 해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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