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면 집권 2년 차를 맞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율 70% 이상의 고공비행을 이어가며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문 대통령과 단단한 공조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도 50%를 웃돌고 있다.
다른 야당들은 생존을 위한 변혁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다당제 기치를 내걸고 당이 갈라질 수 있는 아픔을 무릅쓰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일부 의원이 추가로 한국당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통합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남이 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처절함이 묻어 있다.
보수 터줏대감을 자처하고 있는 홍 대표와 한국당은 뭘 하고 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지지율은 17% 선에 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복지재정 확대 등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변변하게 대응조차 못하고 있다. 국민 신뢰를 잃은 데다 와신상담 의지도 없는 정당이 밟아야 하는 전철을 고스란히 걷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손을 잡고 업신여기듯이 한국당을 ‘패싱’하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홍 대표와 한국당이 처절하게 변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당 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이탈리아 정치만 아는 사람은 이탈리아조차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기 논리와 도그마에 빠진 한국당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들린다. 시대 정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한국당만 아는 홍 대표와 의원들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우선 ‘딴지 걸기’를 중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실책이나 헛발질을 기다리면서 이념적으로 공격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책 어젠다를 선점하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 그림자만 뒤쫓아 가다가는 제1야당의 자리마저 내줄 수 있다. 한국당에 이골이 난 보수층이 바른정당으로 발길을 옮기는 현실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 모욕을 받아도 변하는 방법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정신적 승리’라며 스스로 위안하는 루쉰의 ‘아Q’는 아닌지 자기반성을 할 때다.
내년 6·13 지방선거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대 난망이다. 홍 대표가 안대희 전 대법관, 장제국 부산 동서대 총장을 영입하기 위해 연통을 넣었지만 모두 고사하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홍정욱 전 의원도 즉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당에서 희망의 빛이 아니라 절망의 늪을 봤기 때문이다.
홍 대표와 한국당은 개헌 약속을 지켜야 한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 등 후보들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기로 했다. 공통공약이었다. 하지만 정치지형이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한국당은 ‘개헌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국회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내년 말까지 하자’고 딴지를 걸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향해서는 ‘땡처리 패키지 여행상품 다루듯 몰고 간다’며 애먼 소리를 하고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개헌은 국민적인 관심사이고 국가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그런데도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자기 입장을 여반장처럼 바꾸는 보수는 진짜가 아니라 사이비다. 엿장수 흥정하듯 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내건 약속은 지켜야 한다. 개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다.
홍 대표의 책 제목처럼 한국당은 지금 ‘변방’에 있다. 중심에서 한참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정책독주 열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아 세우는 격이다. 한국당은 남의 실수를 기다리지 말고 정책 어젠다를 만들어 주도하는 지혜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과의 약속이행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영국의 보수주의자 애드먼드 버크는 “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그 보존수단도 없다”고 일갈했다. 변화를 거부하면 한국당은 보존할 수 없다. 홍 대표와 한국당이 제대로 된 보수로 거듭나기를 ‘그래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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