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가상계좌를 발급하는 은행에 계좌가 있어야만 입출금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거래가 더욱 극성을 부리면 아예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고까지 한발 더 나갔다.
실제 국내의 가상화폐 거래 열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과열 그 자체다. 현재 전 세계 하루 가상화폐 거래량의 10~20%가량이 원화로 이뤄지고 있으며 가상화폐거래소 빗썸과 업비트의 경우 전 세계 거래소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전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가상화폐 거래가 정부가 우려했던 과열을 넘어 투기 광풍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국내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화되고 있고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사회병리 현상을 낳을 수 있다며 공개 경고까지 했다.
더구나 거래 과열로 한국 거래소의 가격이 외국 거래소보다 20% 이상 비싸게 거래되는 ‘코리안 프리미엄’ 현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가상화폐 시장에 충격이 올 경우 그 하락폭이 외국보다 훨씬 크게 반영될 수 있어 투자자의 손실 위험이 그만큼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8일에서 10일 사이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할 때 비트코인의 세계 시세는 36% 내렸으나 한국 시세는 44% 급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상화폐 거래에 뛰어드는 투자자가 한 달 만에 100만명 넘게 증가할 정도로 전 국민이 가상화폐 거래 광풍에 휩쓸리고 있다. 빗썸의 누적회원 수는 지난달 말 148만명에서 최근 250만명으로 한 달도 채 안 돼 100만명이 늘었다. 이는 34만명이었던 올해 1월과 비교하면 7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이 총리가 사회병리화 되고 있다고 경고 발언한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입세가 더욱 거세진 것이다. 심지어 일부 투자자들은 현재 서버 증설 문제로 신규 회원 거래를 중단한 업비트가 당장 거래를 열도록 하라고 청와대에 청원을 넣는 일도 생기고 있다.
정부의 이번 고강도 규제는 정부 규제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광풍이 유지된 데 따른 극단적인 선택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가 도입되면 신규 투자자 유입은 상당 부분 차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발급하는 가상계좌와 고객이 입출금하는 계좌의 은행이 일치하도록 하는 것인데 기존에 정부가 추진하던 어떤 은행이든 상관없이 단 하나의 실명계좌를 통해서만 거래소의 가상계좌로 입출금할 수 있도록 하던 ‘가상계좌 본인확인 서비스’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이 경우 특정 거래소와 가상계좌 발급 계약을 한 은행에 입출금계좌가 없는 경우 새로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대포통장을 방지하기 위해 소득 증빙 등 계좌 발급 요건이 강화됐기에 이 조치는 거래 진입의 허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이날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은행에 내년 1월 중순 관련 시스템이 마련되기 전까지 당장 신규 회원에게 새로운 가상계좌를 부여하는 것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금융위는 1인당 가상화폐 거래한도 설정도 검토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도 가상화폐 투기 광풍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금융감독원 등 관련 부처에는 ‘왜 거래를 막느냐’는 투자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이번 대책에도 투기 광풍이 가라앉지 않을 경우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완전 폐쇄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 규제로 가격이 폭락할 경우 기존 투자자들의 반발이 심해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 이날 오전10시 정부 대책이 발표되자 몇 분만에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20%가량 급락했다가 오후5시 현재 전날보다 10% 하락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조권형·김기혁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