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불법주차 차량' 밀어버릴 수 있다지만…

상당수 지자체 '보상기준' 있지만 실효성 없어
사고발생땐 대부분 소방관이 개인 돈으로 변상

21일 제천 화재사고 당시 불법 주차된 차량들./서울경제DB
현행법상 소방차의 긴급한 통행이 필요할 경우 불법 주차 차량을 밀어낼 수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당국은 지난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불법 주차 차량 탓에 사다리 차량의 진입이 막히면서 구조가 늦어졌다고 밝혔다. 소방차가 불법 주차 차량을 훼손하거나 밀어버려도 소방관들이 책임지지 않게 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은 지난 28일 오후까지 3만3,000여명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다.

소방기본법상 긴급하게 출동한 소방차의 통행을 막거나 소방 활동에 방해되는 주·정차 차량의 ‘제거’ 또는 ‘이동’할 수 있다. ‘없애버린다’는 제거의 사전적 의미에 비춰보면 긴급한 통행이 필요할 경우 차량 훼손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광역 자치단체는 자체적으로 주차 차량 제거·이동에 따른 물적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보상 기준도 마련했다. 훼손된 차량의 보상 비용을 지자체에서 대준다는 것. 이런 조례를 마련한 곳은 지난 21일 대형 화재로 29명의 사망자와 39명의 부상자가 난 충북은 물론 △서울 △부산 △광주 △세종 △울산 △경기 등 7개 시·도다. 조례는 올해 3월 서울을 시작으로 제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조례가 소방관들의 부담을 덜어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간인이 청구한 보상 금액을 손실보상심의위원회가 심의·의결해야 하지만 서울·부산 등을 제외하고 이 위원회가 설치된 곳은 찾기 어렵다. 조례가 제정돼 있어도 소방관들은 주·정차 차량을 치우는 것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소방청이 2015년부터 지난 6월까지 전국 소방관서에서 파악한 소방관 개인 변상 건수와 금액은 총 20건, 금액은 1,732만 원에 달한다. 땅속의 벌집을 제거하려고 토치램프를 썼다가 개인 임야로 불이 번지는 바람에 1,000만 원을 변상한 소방관도 있다. 구조활동을 하다가 출입문 잠금장치를 파손해 변상한 소방관, 불이 난 빌라 2층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려다가 노후된 방범창이 주차 차량 위로 떨어져 수리비를 물은 소방관도 있다. 현행법에는 피해자가 변상을 요구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부담할 근거가 된다. 하지만 소방관들이 개인 돈으로 변상하고 사고를 마무리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홍태화인턴기자 taehw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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