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는만남 A to Z] '직장살이'하는 을들의 대피처, 직장갑질119를 아시나요?

#고나리자가 #직장살이를 시키면 평생 #야근각

올 한해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은어들이다. 의역하자면 “관리자(상사)가 시집살이처럼 업무로 괴롭히기 시작하면 항상 야근해야 한다”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68%)은 직장 내에서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느끼는 ‘회사 우울증’에 시달린다. 특히 10명 중 9명(87.2%)은 연말에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처럼 매일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로 멘탈이 아픈 직장인들을 위한 아지트가 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일명 ‘온라인 해우소’라고 불리는 직장갑질119가 바로 그 곳이다. 얼마 전 간호사들에게 장기자랑을 강요해 물의를 빚었던 한 병원 사건이 직장갑질119 오픈 카톡방을 통해 알려지면서 각계각층의 ‘을’들의 대피처로 떠올랐다. 서울경제신문은 ‘직장갑질119’에서 제보자들과 소통하며 핵심 운영진으로 활동 중인 박성우 노무사를 만나고 왔다.



직장갑질119에서 활동 중인 박성우(44)노무사 모습 /정가람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성우입니다. 2001년 공인노무사시험에 합격한 17년차 노무사입니다. 직장119에서는 주로 이메일 상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공대 산업공학과를 전공했어요. 당시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었는데 그러다보니 학업에 소홀해져서 졸업장을 못 받게 됐어요. 그래서 군대 갔다가 취직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터졌죠.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가까이서 그런 사례들을 접하면서 근로자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노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제가 수험생 때 만해도 노무사 시험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어요. 노무사에 ‘노’자도 몰랐던 터라 저 같은 수험생들을 위해 정보 공유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노동과 삶’이라는 카페와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입소문을 타고 수험생뿐만 아니라 현직 노무사들도 하나둘씩 가입하는 거예요. 순식간에 정보 보물창고가 됐어요. 정작 제 시험 공부는 안 하고 그 재미에 빠져 시간을 보냈어요.


직장갑질 119는 지난해 촛불 집회 때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특히 늦은 시간에 젊은 사람들로 광장이 꽉 차는 걸 보고 ‘대체 왜 늦게 젊은이들이 모일까’ 궁금했죠. 알고보니 ‘주말 아르바이트 혹은 야근 후 뒤늦게 참여한 근로자들’이더라고요. 제 직업 특성상 때문인지 촛불집회 현장에서도 각계각층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죠. 사실 직장인들이 힘든 일들을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거나 개인 SNS 등에서 토로하잖아요. 직장 내 갑질로 억눌린 사람들의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난 5월부터 몇 달간 공개 토론회를 진행한 후 11월에 출범하게 됐죠.



직장갑질 119의 핵심 운영진들이 지난 11월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층에서 출범식을 한 뒤 거울을 들고 ‘갑질 반사’ 퍼포먼스하는 모습./사진=직장갑질119 제공
저희는 시민단체 활동가, 노무사, 변호사, 노동전문가 등 총 241명으로 구성된 민간 공익단체예요. 직장인들이 고충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주무대로 삼게 됐어요.



페이스북 페이지 ‘직장인 대나무숲’이 고충을 토로하는 익명 게시판이라면 저희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업계 종사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적 지원 등 전문적으로 방법을 고민해보는 공간이죠. 그래서 오픈 채팅방에는 노무사, 변호사 등의 스태프가 함께 상주하고 있답니다.



직장갑질119를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 카카오톡 오픈 채팅 검색창에서 ‘직장갑질 119’를 검색하거나 인터넷 주소 ‘gabjil119.com’을 통해서 오픈 채팅방에 입장할 수 있어요. 상담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예요. 대개 고민을 털어놓으면 노무사, 변호사, 노동전문가 등 스태프들이 상담이나 법률 지원을 해주죠. 상담시간 외에는 카톡방 참여자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분위기예요. 두 번째는 이메일 상담이 있어요. 주로 카톡방에 공개하기 어려운 고민이나 사연을 가진 분들이 보냅니다. 저는 주로 이메일 상담을 담당하고 있어요. 법률적인 단계를 포함해 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해서 답변하고 있죠.




최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 있었어요. 어느 워킹맘분이 저희에게 메일을 보내셨어요. 이메일 상담의 경우 답변 회신이 최소 3일 정도 걸리거든요. 그런데 그 분께서 급한 상황이었던터라 오픈채팅방에서도 근무외 시간에 사연을 남겨주신거예요. 사연을 들어보니 자기 과실로 회사의 큰 손해가 발생했는데 사측에서 수 천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내라는 거였죠. 저희가 다음 날 카톡방을 보고 바로 연락을 해서 메일로 답변을 보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저희의 답변을 기다리는 몇 시간 사이에 어린 자식과 함께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한 사람의 생명과 인생이 내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면서도 더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되더라고요.



제 캐릭터는 ‘옆집 삼촌’입니다. 오픈 채팅방에서도 늘 참여자들이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죠. 특히 저는 ‘법률 용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어요. 노무사인 제가 봐도 사실 노동법이 무슨 말인지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일반인들이 보면 위화감이 들 수 있잖아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저만의 노하우 인 것 같아요.



단체 출범 한 달 만에 676건의 메일, 1,330건의 오픈 채팅방 제보가 쏟아졌어요. 일 평균 68건의 제보가 들어옵니다. 시간대는 주로 오전 10~11시, 오후 7~9시 사이에 제보가 가장 많아요. 주로 이용 연령대는 30~40대고요. 익명이다 보니 정확한 성별이나 연령대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제보 내용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여성 비율도 꽤 높은 편이에요.

민간단체이다 보니 대부분 본업이 따로 있고 재능기부 형식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상 여기서 활동하면서 받는 수익은 제로죠. 그래서 저희끼리 소정의 수임료라도 받으면서 재정적인 부분을 마련할까 고민하다가 저희는 공익단체이니까 당분간은 무료 상담을 유지하기로 했어요. 다들 본업이 있으니 주로 퇴근 후 활동한답니다. 더 나은 직장 문화, 근로 환경을 위해서 일하는 단체인데 저희는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웃음)



소위 ‘을’은 힘이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고민을 하는 사람이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설 용기가 없는거죠. 그래서 ‘을’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전문가 뿐만 아니라 동종업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든거예요. 실례로 IT 업계에선 게임을 출시하기 며칠 전부터 밤을 새워서라도 작업을 완성시키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라는 장시간 노동 관행이 있습니다. 한 직원이 회사 게시판에 이에 대해 글을 작성했고, 바로 언론 보도가 되면서 크런치 모드가 취소됐어요. 이처럼 직장갑질119를 통해 소통이 이뤄진다면 갑질 관행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체불부터 직장내 괴롭힘까지’ 직장갑질 대처법 7가지
제보된 사연들을 보면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권고사직 당했습니다. 부당해고 신고할 수 있나요?”인데요. 사실 이건 앞뒤가 안 맞는 말이에요. ‘권고사직’이란 회사에서 나가라고 권고했을 때 사표 쓰고 나오는 건데요. 즉 스스로 사표를 썼기 때문에 해고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회사에서 강요해서 썼기 때문에 부당해고로 다툴 수 있다고 생각하시죠. 어떤 경우에도 자발적인 사직이 아니면 사표를 써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런 법률적인 팁들이 굉장히 많은데 많이들 모르고 계셔서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있어요.



17년간 노무사로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근로자들을 만나 다양한 사연을 들었죠. 그런데 최근 직장갑질119 활동을 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근로 환경, 문화들을 알게 됐죠. 그런데 사실 법적으로 해결책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법의 사각지대를 극복하는 해결책은 같은 고민을 가진 근로자들의 조직된 힘이에요. 냉정하게 말하면 저희는 노동현장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고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대한민국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우울감을 느껴본 적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정작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희 공간에서만큼은 속 시원히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을 털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누구나 어느 직장에서나 ‘갑질’에 노출될 수 있거든요.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더 나은 직장 그리고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들어 저희 채팅방을 통해 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사건들이 알려지고 개선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 더욱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직장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박성우 노무사가 틈틈이 직장갑질119 오픈 채팅방을 확인하고 답변하고 있다. /정가람기자
평소 스트레스 받을 때 혼자 건프라 만들어요. 방에서 조용히 하루종일 작업을 하다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외에도 보기와는 다르게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웃음)

개인적으로 신년 목표가 있다면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에요. 딸이 이제 곧 사춘기라서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정가람기자·장아람인턴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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