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여는 마음가짐이 가장 결연한 사람들을 꼽으라면 올림픽을 앞둔 선수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해를 맞은 한국 선수단은 자나 깨나 그려왔던 새해 소망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희망찬 무술년의 태양을 국내외에서 마주했다. 한국 선수단의 목표는 ‘금 8·은 4·동메달 8개-종합 4위’의 역대 최고 성적. 메달 퍼레이드의 선봉에 설 든든한 기대주들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망의 올림픽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써내려가기 위해 막바지 담금질에 한창이다.
◇부동의 에이스 최민정, 반칙도 실력으로 넘는다=전통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은 지난달 끝난 월드컵 시리즈에서 금메달 15개를 쓸어담으며 성공적인 모의고사를 치렀다. 그중에서도 여자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19·성남시청)은 네 차례 월드컵 개인 종목에 출전해 5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평창에서 한국 동·하계 올림픽 사상 최초로 4관왕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그를 따라다닌다. 단거리인 500m와 중거리 1,000·1,500m, 그리고 3,000m 계주의 전 종목을 석권하는 것이다. 변수는 경쟁 선수의 반칙 작전이다. 최민정은 올 시즌 2차 월드컵 500m 준결선에서 추월을 시도하던 판커신(중국)과 부딪쳐 3위로 통과했다. 판커신이 최민정을 밀쳤으나 결과는 최민정의 실격이었다. 충돌 시의 불합리한 판정은 늘 쇼트트랙의 맹점으로 지적돼왔는데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자 최민정은 2차 월드컵 이후로는 아예 아웃코스로 빙 둘러 나 홀로 레이스를 펼치는 전략으로 충돌 가능성을 피했다.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지구력을 동시에 갖춘 최민정이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최민정 하면 따라붙는 4관왕이라는 목표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덤덤하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니 힘이 난다는 생각만 하면서 부담감을 감당하고 있다”는 설명. “스타트 라인에 서는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태릉선수촌에서 합숙 중인 최민정은 개인 종목보다는 계주 금메달에 초점을 맞추며 중압감을 이겨내고 있다. 쇼트트랙 팬들이 특히 기대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이 올림픽에서 한 번도 금메달을 딴 적 없는 여자 500m에서 최민정이 노 골드 사슬을 끊는 것이다. 최민정은 “이 종목에서는 나 혼자 기대를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며 “도전자의 자세로 (금메달)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이승훈·이상화 ‘올림픽은 우리 놀이터’=스피드스케이팅(빙속) 남녀 간판 이승훈(29·대한항공)과 이상화(28·스포츠토토)는 올림픽이 익숙하다. 평창이 이승훈에게는 세 번째, 이상화에게는 네 번째 올림픽이다. 이승훈은 2010 밴쿠버 대회 1만m 금, 5,000m 은메달을 딴 뒤 2014 소치에서 팀추월 은메달을 땄다. 2006 토리노 대회 500m를 5위로 마친 뒤 눈물을 보였던 이상화는 밴쿠버·소치에서 2연패를 달성하고 ‘빙속여제’ 칭호를 얻었다. 둘은 한국체대 07학번으로 절친한 사이다.
지난달 30일 끝난 전국종합선수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이승훈은 평창에서 처음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열리는 매스스타트(집단 출발)의 금메달 후보다. 두 차례 월드컵 금메달로 자신감을 장착한 그는 “2018년도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결혼했지만 훈련을 위해 신혼여행도 미룬 이승훈은 빛나는 금메달을 품고 홀가분하게 둘만의 여행을 떠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이상화는 “본 게임은 평창올림픽”이라고 말한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2016년 종아리 부상까지 겹치면서 시련의 계절을 보낸 그는 최근에는 뚜렷한 회복세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500m 24연승의 고다이라 나오(일본)에게 가려 월드컵 랭킹 2위로 리허설을 마쳤지만 이상화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다이라와의 격차도 0.15초까지 좁힌 상황. 특히 이상화가 중요하게 여기는 초반 100m 기록에서 10초2대를 찍어 한때 고다이라를 앞서기도 했다. “잃었던 속도감을 찾았다”는 말에서 3연패에 대한 믿음이 엿보인다.
◇개띠 윤성빈과 배추보이 이상호의 새 역사 도전=1994년생 개띠인 윤성빈(강원도청)은 “제가 황금 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설 연휴에 스켈레톤 경기가 열리는데 기분 좋은 명절에 기분 좋은 결과를 전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 지난달 30일 출국, 독일에서 새해를 맞은 윤성빈은 두 차례 월드컵을 치른 뒤 오는 14일 귀국한다. 이후로는 홈 트랙에서 반복 또 반복 훈련이다. 윤성빈은 올 시즌 월드컵에서 금 3, 은메달 2개를 획득,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밀어내고 세계랭킹 1위에 올라있다. 썰매 종목 첫 올림픽 금메달 기대가 무리가 아니다. 윤성빈은 “홈 이점 덕분이라는 생각보다 어느 트랙에서 경기해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드리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스키 종목 첫 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22·CJ)도 남은 월드컵 일정을 위해 지난달 31일 유럽으로 떠났다. 그는 스노보드 알파인 평행대회전에서 지난해 2월 삿포로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3월 월드컵 은메달 등으로 희망을 부풀렸다. 이상호는 “생애 첫 올림픽이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앞으로 치를 여러 올림픽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