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기회복이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노동개혁을 비롯한 친시장적 정책에 힘입어 경기가 상승세를 타면서 노동 수요가 확대된 결과다. 지난해 지지부진했던 물가 역시 임금 인상으로 소비심리가 개선되며 동반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콜로라도주 덴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미국 주요 지역에서 임금 인상이 두드러졌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기회복으로 건설·제조·정보기술(IT) 산업을 중심으로 인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던 임금이 지자체별로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미니애폴리스와 덴버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전년동기 대비 4%를 넘겨 미국 전체 평균인 2%를 2배나 웃돌았다. 미니애폴리스와 덴버는 미국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규모가 큰 도시로 이 지역 경제지표는 미국 전체 기준에 선행하는 경향이 있어 임금 상승 추세가 미국 전역에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워싱턴·뉴욕·캘리포니아·콜로라도 등 18개 주가 이날부터 최저임금을 인상했거나 올해 중으로 올릴 계획이다.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2%대의 임금인상폭을 유지해온 일본 대기업들도 5년간 지속된 ‘아베노믹스’의 경기부양 효과로 올해 인상폭을 키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마이니치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3% 이상의 (임금) 인상은 사회적 요청”이라며 “춘투(임금협상)에서 각 회원사가 전향적으로 검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 대표로 임금 인상에 보수적인 게이단렌이 인상 수치 목표를 이례적으로 특정한 것이다.
이 밖에 스페인은 오는 2020년까지 해마다 최저임금을 4%·5%·10%씩 단계적으로 올려 총 20.2% 인상을 단행하기로 정부와 노조가 합의한 상태다. 최저임금 인상의 조건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5% 이상’이 포함됐지만 지난해 경제성장률 예상치가 3.1%로 집계되는 등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어 달성에 무리가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영국도 실업률이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올해 기업들이 임금 수준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의 임금 인상은 경제정책으로 이룬 지난해의 경기호조가 마침내 기업들의 채용경쟁으로 확대된 신호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각국 정부의 재정확대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3·4분기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3.2%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 고용시장도 호조다. 미국과 일본의 지난해 11월 실업률은 각각 4.1%, 2.8%로 ‘완전고용’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유로존 실업률도 4년간 꾸준히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난해 평균 임금 상승률은 2% 초반대에 머물러 ‘경제회복이 임금 인상과 소비 확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컸지만 각국의 인재채용 경쟁이 활발해지면서 마침내 임금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이 임금을 끌어올린 경우도 있다. 스페인은 2012년 ‘단체협약 현대화’를 골자로 한 노동개혁을 추진, 노사분규를 억제하기 위해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사측의 교섭권만 확대하는 셈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 같은 변화가 제조업 성장과 수출 확대, 고용 증가로 이어지면서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분석된다.
WSJ는 임금 인상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경제활동을 아예 포기했던 ‘실망실업자’들을 고용시장으로 유입시키면서 경제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임금 인상이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았던 물가 부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WSJ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임금 인상을 인플레이션의 초기 지표로 볼 것”이라고 전했다. 사카키바라 게이단렌 회장도 “경기 회복이 진행되면서 올해는 (정부와 일본은행이) 디플레이션 탈피를 선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