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대법원이 몰수 명령을 내려 그간 국가가 보관해온 ‘모내기’를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00년 특별사면을 받은 신 화백은 몰수된 작품을 돌려달라고 했고 이후 유엔 인권이사회도 그림 반환을 권고했으나 당시 법무부는 현행법상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간 ‘모내기’는 서울중앙지검 증거물 보관창고에 있었다.
오랜 병 수발 끝에 아내와 사별하고 10년 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신 화백을 만난 것은 2016년 초였다. 그는 떠나보낸 아내 못지않은 안타까움을 담아 ‘모내기’를 얘기했다. “내가 화나는 것은 작품을 꼬깃꼬깃 접어 작은 박스에 보관하고 있는 거라오. 둘둘 말아 두라고도 당부했는데. 이게 100호짜리라 (크니까) 뚝 꺾어 상자에 넣은 건가. 만약 돌려받는다면 이걸 상자에 넣은 채 그대로 ‘흔적’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내놓으렵니다.” 그의 말처럼 구겨지고 여기저기 물감이 떨어져 나간 그림은 남북이 갈라지고 좌우로 나뉘어 갈팡질팡한 우리 ‘역사의 흔적’이라고 불릴 만하다.
신 화백이 ‘모내기’를 그리던 때는 2017년 12월 개봉한 영화 ‘1987’과 겹쳐진다. 영화는 그해 경찰 조사 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와 이로 촉발된 6월 항쟁에서 최루탄에 맞아 세상을 뜬 대학생 이한열 등을 다룬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측은 영화 개봉 후 이한열 역의 배우 강동원에게 “배우로서의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로 제일 먼저 달려와 배역을 수락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250만여명을 동원한 영화 ‘1987’은 좌파 영화가 아니다. 따지자면 상업영화다. 배우가 영화를 선택할 때 ‘불이익’을 생각해야 한다면 그 시대가 문제다.
시절이 달라졌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시선이 바뀔 때다. 예술에 좌우가 어딨겠나. 혹여 좌파·우파를 가른다면 이미 그것은 예술로서의 순수성을 잃은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그렇게 치자면 예술가의 상당수는 좌파일지 모른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카트린 체케니스 문화재단 디렉터는 “예술가의 역할로 보면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 비판을 통해 새로운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사에 관심을 갖되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는 예술가의 본분이다. 비판적 시각은 숙명이다. 애먼 예술을 좌우의 관점으로 재단하지 말자. 예술로 만끽하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