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다. 너무 뜨거워 델 지경이었다. 거래소 직원에게 돈다발을 내놓으며 아무거나 찍어 달라는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는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싸들고 와 일주일만 투자하겠다고 했다. 한 달도 안 돼 두 배, 세 배를 벌었다는 말이 주변에서 쏟아졌다.
1999~2001년 초반까지 전국을 휩쓸었던 벤처 투자 열기는 이렇게 강렬했다. 벤처는 청년에게는 취업의 다른 말이었고 퇴직자에게는 재기의 보증수표였다. 환란이 가져온 사상 최악의 실업난으로 취업 문은 닫혔지만 기술 하나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졌다. 2000년 상반기에만 2만개의 기업이 창업을 했다.
그 뜨겁던 열풍이 살을 에는 삭풍으로 돌아온 것은 불과 1년 후. 신경제에 대한 환상은 깨졌고 정부는 코스닥을 투기판으로 몰아붙였다. 벤처가 희망이라던 구호는 사라졌고 꿈을 찾던 젊은이와 퇴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정책의 배신이자 사회의 배신이었다. 당시 청년층의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세 배를 훌쩍 넘었다.
20년 가까이 지나 다시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 이번에는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다. 올 1월까지만 해도 100만원 안팎에서 맴돌던 비트코인 가격이 지금은 1,800만원선을 훌쩍 넘어섰다.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20%가 원화로 거래되기도 한다. 세계 증시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2%인 점을 생각하면 이상 과열은 분명하다.
열풍을 넘어 광풍으로 달리는 가상화폐를 보며 많은 이들이 ‘비이성적 투기’라고 한다. 정부도 ‘간과하지 않겠다’며 거래소 폐쇄 검토를 포함한 초강경 제재 카드를 꺼냈다. 이들의 눈에는 ‘가상화폐=죄악’이다.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 가상화폐 투자자의 10명 중 6명은 20대와 30대다. 닷컴 버블 당시 20·30대가 창업에 집중했고 투기에 뛰어든 상당수가 40대 이상이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설명이 필요하지만 누구도 대답이 없다. 주무부처 장관이 나와서 ‘거품은 꺼진다. 내기를 해도 좋다’고 했지만 정말 장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가상화폐 투자를 하지 않는 50대의 눈에는 그렇다.
얼마 전 한 취업 포털이 직장인에게 가상화폐 투자 이유에 대해 물었다. 고수익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눈에 띄는 것은 그 다음이다. 가상화폐가 ‘현실탈출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대답이 다섯 번째로 많았다. 팍팍한 생활에 짓눌린 삶의 무게가 가상화폐 투기의 현장에서도 진하게 묻어난다. 한 누리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솔직히 평생 월급쟁이 해서 어찌 집을 살까. 이거라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우리의 삶의 질은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환란 이후 청년실업 해소는 모든 정권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나아진 게 없다. 정부는 무능했고 기업은 방치했고 기성세대는 침묵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러갔다. ‘88만원 세대’가 등장했고 지금은 ‘78만원 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청년실업률은 공식적으로 9%대이지만 체감실업률은 20%가 넘는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꿈이 보이지 않는다. 기존질서에서 찾지 못한 미래를 청년들은 다른 곳에서 찾는다. 수학교사를 꿈꾸던 한 대학생은 가상화폐 투자 이유를 묻는 외신과의 인터뷰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하루 10시간씩 몇 달 동안 가상화폐에 대해 공부했고 이것이 나의 미래라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수학교사는 더 이상 제 꿈이 아닙니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말했다. 도박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거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청년들은 되묻고 있다. 아예 없는 것을 걸고 불확실한 것에 투자하는 게 잘못이냐고.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신종 투기에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 그럴 수 없다면 모두가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고 더 나눠야 할 의무는 젊은이들의 몫이 아니다. /skong@sedaily.com